[천자칼럼] 종군기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로버트 카파(1913∼54)는 종군기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람이다.
카파는 짧은 생애 동안 무려 다섯번이나 전쟁터를 누볐는데, 그가 전세계에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1936년 스페인 내란 중에 찍은 '어느 병사의 죽음'이 라이프지 표지에 실리면서부터였다.
참호를 뛰어 나오던 병사가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인간이 처한 극한 상황에서의 휴머니티를 전하고자 했던 그는 결국 인도차이나전쟁을 취재하던 중 지뢰를 밟아 사망했다.
그의 이름을 딴 '카파이즘'은 치열한 기자정신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세계 최초의 종군기자는 크림전쟁에 참전한 '런던 타임스'의 윌리엄 러셀이었다고 한다.
그의 기사를 보고 나이팅게일이 전선으로 달려갔으며 이것이 적십자를 설립하는 하나의 동기가 됐다고 전해진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윈스턴 처칠도 보어전쟁에 파견된 '데일리 그래픽'의 종군기자였고,헤밍웨이도 1차 대전과 스페인내전에 직접 참여한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종군기자는 이 땅 위에서 전쟁을 없애려는 고발자인 셈이다.
미국 CNN방송의 아만푸어는 "기사를 내보내면 즉시 세계가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전전하게 된다"고 말한다.
전쟁의 비극을 전하는 한장의 사진과 한 줄의 기사가 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은 예는 허다하다.
베트남전쟁 당시 불타는 가옥을 뒤로 한채 벌거벗고 거리를 달리는 소녀의 모습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라크전쟁에 사상 최대의 종군기자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쿠웨이트의 연합군사령부가 공식집계한 기자수만도 2천74명인데,각국 언론사들이 요르단 터키 카타르 등지의 이라크 인접국가에 특파한 기자수는 파악조차 어려울 지경이라고 한다.
이처럼 언론인들이 대거 전쟁취재에 나서면서 그 희생도 많아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뉴스들이 들린다.
전쟁을 고발하는 기자정신이 목숨과 맞바뀌는 것 같아 그저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