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공포와 인도주의 그리고 전쟁으로 상실된 인간성'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지 일주일만인 26일(이하 현지시간) 이슬람 구호단체인적신월사(적십자사)의 첫 구호품이 전달된 쿠웨이트 접경 이라크 국경도시 사프완의 풍경은 한마디로 아비규환(阿鼻叫喚)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구호품을 실은 3대의 대형트럭이 낮 12시30분 쿠웨이트시티내 적신월사 본부를 출발, 2차례의 국경 검문소를 거친 뒤 오후 4시 넘어 겨우 국경을 지나 이라크 접경지역에 도착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왜소한 체격의 7-10세 아이들이 우르르 트럭으로 몰려 들었다. 아이들을 지나치자 이라크 주민 500여명이 구호품 도착을 반기며 아이들처럼 뛰면서 환호했다. 하지만 구호품을 실고 있는 대형트럭의 트레일러 문이 열리자 갑자기 구호품 전달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주민들은 트럭안으로 뛰어 들어 아랍 전통 빵 5개와 생수 3병, 우유와 주스 각 3개, 비스킷 한상자를 한 묶음으로 포장한 구호물품이 담겨있는 상자를 마치 약탈하듯 가져가기 시작했다. 구호품을 본 주민들은 주위의 눈치나 체면 등을 모두 내팽겨치고 구호품을 하나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트레일러 앞에서 두 손을 번쩍들고 몰려 들었으며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인도주의 물품이 전달되고 있는 현장에도 주먹질과 욕설이 오가고 서로 밀치는등 이라크인들은 여기서도 또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건장한 청년들은 적신월사마크인 붉은 초생달이 선명한 흰상자를 많게는 10여개까지 가져 갔다. 하지만 이란전, 걸프전 등 수십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훨씬 더 늙어버린 노인들과 검은 휘잡을 온 몸에 두른 부녀자들, 헐벗고 굶주림에 지친 맨발의 아이들은 구호품을 받기위해 애써 보지만 그들의 손은 여전히 빈손이었다. 라면상자 크기의 흰 상자 1개면 최소한 5인 가족이 하루 이상을 연명할 수 있는 분량이다. 한 주민은 수십개 상자를 챙긴채 득의에 차있는 청년들을 가리키며 "저들은 구호품으로 장사를 할 것"이라고 귀뜸했다. 모든게 부족해 보였다. 만나는 주민마다 한결같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데다 물도 없다고 울먹였다. 개중에는 담배를 달라면서 담배를 피우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사담 살만(31)씨는 기자들에게 `노 푸드'(no food),`노 워터'(no water)를 연신외쳐댔다. 구호품을 하나라도 더 챙기기 위해 트럭 주위를 맴돌던 아바스 카덴(11)은 "어제 저녁을 먹고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말했으며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의 리푸트다이(10)는 "아침밥은 먹었는데 마실 물이 없다"며 목마르다는 시늉을 했다. 이들에게서는 전쟁의 공포와 함께 무언지 모르는 또다른 공포감이 느껴졌다. 각국 보도진들이 사진촬영을 하려고 하자 놀라는 표정으로 얼굴을 가렸으며 이름을 물어보자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면서 주저했다. 알리스 살라(38)씨는 "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너무 배가 고프기 때문에 지금은 그가 싫다"고 말했다. 하지만 휘잡을 두른 한 여인은 서방기자들에게 따지듯이"사담은 그래도 먹을 것을 줬으나 전쟁이 나면서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고 외쳤다. 무엇보다 구호물품이 처음 이라크에 도착했을 때 뜻밖에 이들은 `사담'을 연호하고 있어 외신기자들과 적신월사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자신을 바스라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라고만 밝힌 한 주민은 "지금 이들주민 속에서도 사담의 비밀경찰이 있다"면서 "아직 사담 정권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주민들은 사담을 무서워한다"고 속삭였다. 이들이 이곳에 어떻게 왔을까. 살라씨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접경지역에서는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라크 TV는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며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쿠웨이트TV와 라디오방송을 통해 구호품 전달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데 어떻게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느냐고 묻자 얼굴을 찌푸린 뒤 구호품을 챙겨야 한다며 트럭쪽으로 달려갔다. 이같은 광경을 바라보는 미군들의 심정은 어떨까. 적신월사 자원봉사자들과 각국 취재진들의 경호를 하고 있던 조니 몬데스 미군 중사는 난장판으로 바뀐 구호품전달현장에 대한 심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냉소적인 목소리로 "그것은 당신(기자)들의 몫"이라며"당신들이 지금 보고 있는 그대로"라고만 짧게 답했다. 굳은 표정으로 전방만을 응시하고 있는 그는 지금은 전쟁중이어서 그같은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쿠웨이트 적신월사의 하니아이 재즈아프씨는 "이처럼 난장판으로 변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내일부터는 학교나 병원 등을 찾아가 체계적인 구호활동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프완=연합뉴스) 이기창.임상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