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돈 넘쳐도 기업 자금확보 '허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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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에 자금이 남아도는 '돈 풍년' 속에 일부 기업들은 심각한 자금경색을 겪는 등 자금시장에 이상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이후 얼어붙은 채권시장이 좀처럼 풀리지 않아 초우량물을 제외하고는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의 '거래실종'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기업들은 통상 만기가 3개월인 CP시장에 1주일짜리 CP를 들고 나올 정도로 자금 회전에 애로를 겪고 있다.
여기에 초우량 기업들도 회사채 시장의 경색이 장기화할 것에 대비, 미리부터 회사채 상환용 자금 확보에 나서 '자금 가수요 현상'까지 빚고 있다.
◆ CP.회사채 시장 고사
기업의 단기자금 조달원인 CP의 발행 규모는 지난 1,2월 하루 평균 8천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SK글로벌 사태가 터진 지난 11일 이후엔 2천억원대로 급감했다.
아직도 거래량은 4천억∼5천억원 수준이다.
금리도 최우량물인 A1등급 CP(만기 3개월 기준)의 경우 연 4.60%선에서 SK사태 이후 5.20%로 치솟았다.
A1등급 외에는 사려는 사람도 없다.
회사채도 마찬가지다.
하루 평균 1조원을 웃돌던 회사채 거래량은 SK글로벌 사태 이후 격감해 지난 27일엔 2천6백억원에 그쳤다.
이마저도 초우량등급인 AA등급의 회사채 정도만 거래될 뿐이다.
때문에 회사채 금리(AA-등급.만기 3년 기준)가 연 5.3%대로 최근 안정됐다고는 하지만 이는 '거래 없는 유령금리'라는 얘기가 나온다.
회사채 신규 발행은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회사채 발행 규모는 지난 2월 마지막주(24∼28일)까지만 해도 1조2천4백4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주(3월17∼22일)엔 3백40억원, 이번주 들어선 27일까지 41억원에 그쳤다.
◆ 은행도 대출 인색
투신권에 돈이 말랐지만 은행엔 자금이 넘치고 있다.
투신권에서 이탈한 돈이 은행의 수시입출식예금인 MMDA로 몰려서다.
은행예금은 이달 들어 지난 24일까지 23조원이나 급증했다.
때문에 기업들은 단기자금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은행 문을 두드리지만 은행들은 반기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SK글로벌 사건 이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초우량 기업 외에는 여신 한도를 줄이는 추세다.
"SK글로벌 사태 이후 일부 대기업의 신용등급이 떨어진 데다 수출환어음(DA) 매입분이 올해부터 동일인 여신 한도에 포함되면서 '한도 초과분'이 발생한 기업들에 대해선 여신 한도를 줄이고 있다."(시중은행 관계자)
은행 기업여신 관계자는 "은행에 돈이 넘치지만 기업들의 신용리스크가 커진 상황에서 기업여신을 섣불리 늘리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우리은행은 기업 신용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5백대 거래 기업의 신용상태를 전면 재평가하는 작업에 최근 착수했다.
SK글로벌과 같은 분식회계 기업으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막자는 포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용등급이 떨어진 중견기업들에 은행 대출은 '그림의 떡'이라는게 업계의 지적이다.
대기업 자금팀 관계자는 "채권시장 자금줄이 말라붙고 은행들마저 대출을 꺼려 일부 재무구조가 나쁜 기업들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 대책은 없나
최근의 자금시장 상황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3.17 카드사 부실대책 발표 이후 국고채 금리가 안정을 찾는 등 일단 최악의 상황은 벗어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한은이 기업들의 자금경색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며 "자금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국고채 금리만 쳐다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도 "시장 불확실성을 빨리 해소해 채권시장을 되살리는게 급선무"라며 "최악의 경우 한은이 시장에서 소화가 안되는 회사채와 카드채 등을 떠안을 비상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병석.유병연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