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에너지 다소비 국가'라는 점은 각종 지표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의 인구는 2001년 세계 26위, 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2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전체 에너지 소비량(10위), 석유 소비량(6위), 석유 수입량(4위) 등에서는 이미 10위권에 진입해 있다. 한국의 1인당 연간 에너지 소비량은 4.19TOE(석유환산t)에 달한다. 2001년 일본(4.07) 영국(3.84) 대만(3.63) 등을 제쳤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 한국보다 소비량이 많은 나라는 미국(8.32) 프랑스(4.37) 독일(4.23) 정도에 불과하다. 올해엔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4.5TOE까지 오를 전망이다. 1천달러의 GDP를 얻기 위해 투입하는 에너지량을 나타내는 '에너지 원단위'(TOE/GDP 1천달러, 2001년 기준) 비교에서도 한국(0.320)은 미국(0.264) 일본(0.096) 독일(0.130)보다 앞서 있다. 똑같은 GDP를 버는데 에너지는 더 많이 써 그만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에너지 원단위가 높은 것은 아직 국내 제품의 브랜드 경쟁력 등이 선진국 제품보다 떨어져 부가가치 창출액이 적은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에너지 소비 수준이 상당수 선진국들을 능가하는 것은 나프타 등 산업용 에너지 수요가 많은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석유화학 철강 등 국가 기간산업 대부분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업종들이어서 에너지 소비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을 감안하더라도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에너지를 물 쓰듯'하는 풍조가 에너지 과소비의 주요인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로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승용차 가전제품 등이 점차 대형화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산업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1천5백cc급 이상 중.대형급 승용차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 85년 28.6%에서 2000년에는 42.5%로 높아졌다. 냉장고의 평균 용량은 같은 기간 1백95.7ℓ에서 4백8.6ℓ로 배 이상 커졌으며 TV 역시 14.9인치에서 23.5인치로 커졌다. 기술 발전으로 그동안 자동차 연비와 가전제품 전력 이용 효율이 크게 향상됐다고는 하지만 이같은 주요 소비재의 대형화 추세는 전력 소비 급증세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 1인당 연간 전력 사용량은 98년 4천1백67Kwh에서 99년 4천5백72Kwh, 2000년 5천57Kwh로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여름철 순간 최대 전력 수요도 2000년부터 4천만Kwh를 넘었다. 결국 전력 수요의 폭증은 매년 수조원의 돈을 발전용 연료 수입과 발전소 건설 및 유지.보수에 쏟아부어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여기에 비례해 에너지 수입액도 늘고 있다. 98년 수입액은 1백81억4천만달러였으나 올해는 3백25억7천만달러로 5년만에 80% 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를 지금보다 10%만 절약하면 1백90만명의 모든 중학생들에게 3년간 무료 급식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외화를 아끼게 된다는 계산이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