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은 국제정세에 커다란 충격을 줄 사건이다. 기존 국제질서에 혼란이 예상된다. 우선 유엔의 권위가 타격을 받게 됐다.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냉전시기에 유엔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두 강대국의 논리에 따라 국제정세가 결정됐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유엔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유엔의 틀 안에서 상호공존을 모색해왔다. 이번 전쟁은 이 같은 유엔의 기능을 전면 부정하면서 발생했다. 유엔 핵사찰 요원들이 활동하고 있음에도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했다. 미국은 안보리 지지를 얻기 어렵게 되자 이를 피했다. 유엔은 이 과정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유엔의 권위는 "강권(强權)정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국제법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 국제관계의 기본 틀은 "주권국가"다. 한 국가의 주권과 영토는 불가침이라는 게 국제법의 기본 사상이다. 조지 W 부시 정부는 이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부시 대통령은 작년 초 이라크 이란 북한 등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지난해 6월에는 적의 공격이 예상될 경우 피동적인 방어에서 벗어나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선발제압" 전략을 마련했다. 미국은 이라크 공격에 대해 "미국의 안전과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고,친미 정권을 수립하려는 게 미국의 속뜻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이라크 국민의 뜻과는 관계없이 주권국가의 정부를 정복하려하고 있다. 현 국제법의 기본 법칙을 무시한 것이다. 미국 국내 일부에서도 전쟁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부시 행정부의 강권주의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국제법을 무시한 미국이 이라크 문제 해결 후 또 어떤 일을 벌일지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셋째 서방국가간 갈등이 예상된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 대해 세계 각국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초 미국은 전쟁을 반대한 국가도 이라크 공격 후 "전쟁 지지"로 돌아설 것으로 생각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 등은 여전히 전쟁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반대 입장이 서방국가 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그들 관계에 커다란 틈새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부시 대통령은 이미 "전쟁에 어떤 입장을 취했느냐"를 기준으로 세계 각 국을 다시 보고 있다. 넷째 중동 정세의 변화다. 이번 전쟁은 중동 정세에 중대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부시 정부가 전쟁을 일으킨 데에는 석유자원 확보라는 차원 이상의 더 큰 노림수가 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고, 이라크에 "친미 민주 정권"을 세우자는 뜻이다. 미국 내 많은 사람들은 중동의 회교 과격 단체들을 장기적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에 민주사상을 전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민주주의가 회교 원리주의의 과격성을 잠재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라크 회교는 중동에서도 가장 세속화(世俗化)된 나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라크 국민들의 사상 역시 매우 개방적이다. 이라크를 대상으로 한 전쟁은 중동지역의 과격단체를 자극,장기적으로 더 큰 잠재적 적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라크 전쟁은 당초 미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중동지역의 평화를 해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리=한우덕 상하이특파원 woodyhan@hankyung.com -------------------------------------------------------------- 이 글은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연구원인 위안정(袁征)박사가 중국 인터넷 매체인 신랑왕에 기고한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