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하우리는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미국 2위의 반도체 장비업체인 케이엘에이-텐코(KLA-Tencor)사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반도체 생산 장비가 '펀러브'라는 바이러스에 걸려 골머리를 앓던 차에 하우리의 백신 제품으로 완치 가능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내용이었다.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에서 러브콜을 받은 권석철 사장은 앞뒤 재 볼 겨를도 없이 제품을 들고 곧장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서 보니 문제는 심각했다. 생산된 반도체의 에러율을 체크하는 최첨단 장비가 펀러브 바이러스에 감염됐는데 치료를 해도 시스템을 재부팅하지 않으면 다시 감염되고 마는 상황이었다. 반도체 생산장비는 잠시라도 작동을 중단하면 높아지는 제품 에러율 때문에 엄청난 금액의 손실로 이어지게 돼 시스템을 자유롭게 재부팅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백신 설치시 시스템을 재부팅하지 않아도 되는 제품을 찾던 중 펀러브 바이러스를 메모리상에서 완치해 내는 하우리의 '바이로봇'을 발견해 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 유수의 기업에 제품을 판매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텐코사 담당자들로서는 제품을 본 후 기술적인 우수함에 대해서는 인정했으나 이름조차 생소한 코리아의 작은 백신업체를 거래처로 신뢰하기는 어려웠던 탓이다. 제품 도입 후의 기술지원 건도 문제가 됐다. 백신제품은 그 특성상 지속적인 사후 서비스가 보장돼야 하는데 해외 지사도 없는 하우리가 어떻게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게 이유였다.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제품 테스트는 이후 몇달에 걸쳐 진행됐다. 그렇게 제품 도입을 망설이던 KLA로 하여금 결정을 내리게 만든 기회는 하우리로서도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찾아왔다. 바로 그해 9월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님다' 바이러스 사태다. 이 바이러스는 강력한 기능을 앞세워 미국 유럽 아시아의 컴퓨터만 최소 1백만대나 감염시켰으며 며칠 사이에 전세계로 퍼져 약 8백30만대의 컴퓨터에 피해를 입혔다. 당시 하우리 제품을 테스트하던 KLA 역시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사태를 계기로 KLA는 신속하게 백신을 개발,사고를 처리하는 하우리의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 백신업체에서 급히 만들어 냈던 백신 가운데는 오히려 멀쩡한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드는 해프닝을 연출한 것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님다 바이러스 앞에서 이들의 망설임은 확신으로 바뀌었고 5개월간의 긴 제품 테스트도 완료됐다. 2001년 11월 하우리는 KLA와 백신 공급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국내 백신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 수출에 성공한 사례이자 한국의 작은 백신업체가 해외 유명 백신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순간이었다. 하우리는 이 수출건을 계기로 실리콘밸리에 미국 현지 법인을 설립,해외시장 진출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장원락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