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장기금리 하락 행진을 멈추기 위해 통화안정증권(1년6개월.2년물)을 사상 최대 규모로 입찰에 부치는 등 강력한 대응책을 동원했으나 금리 하락세를 꺾는 데 실패했다. 1일 입찰 결과 발행 예정 물량 4조원중 3조1천9백억원만이 연 4.71%에 낙찰됐다. 이에 따라 한은의 당초 의도와 달리 지표금리인 국고채 3년물의 유통수익률(금리)은 연 4.61%로 전날보다 0.01%포인트 하락한 채 거래를 마쳤다. 한은은 박승 총재가 지난달 28일 "더 이상 장기금리가 내리는 것을 방치하지 않겠다"고 직접 경고한데 이어 실제 '행동'에까지 나섰으나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한은은 왜 장기금리를 끌어올리려 하는가. 여기에는 한은의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이론적으로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은 '단저장고(短低長高)'의 정상적인 수익률 곡선이 형성될 경우 그만큼 경기가 회복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단고장저(短高長低)'의 역수익률 곡선이 형성될 경우 경기가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월 말 현재 장.단기 금리 차(국고채 수익률-콜금리)는 0.37%포인트로 2001년 말(1.91%포인트)에 비해 크게 좁혀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책금리인 콜금리를 인하하거나 장기금리를 끌어올려 장.단기 금리 차를 벌려주는 것이 중앙은행인 한은의 역할이다. 그러나 테일러 준칙(Taylor's rule)과 같은 한 나라의 적정 금리를 산출하는 방법을 통해 현재의 콜금리(연 4.25%)를 평가해 보면 국내 경제 여건에 비해 너무 낮은 수준이어서 추가 인하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만약 현시점에서 시장의 기대대로 콜금리를 더 내릴 경우 금융부채가 실물투자 수익률보다 상대적으로 값싸 보이는 '부채-디플레(debt-deflation) 신드롬'을 심화시켜 부동산 투기 등 부작용을 촉진시킬 우려가 높다. 바로 이 점이 최근 들어 한은이 장기금리를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는 이유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지금처럼 대내외 금융시장 불안으로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경향이 높은 상태에서 금리조절 풀(pool)을 국채만으로 좁게 운용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처럼 시중 부동자금이 3백70조원에 달하는 상태에서는 통안증권과 같은 국채로 한정해 장기금리를 끌어올리는 정책은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검토해 조만간 시행할 것으로 보이는 금리조절 풀로 국채뿐만 아니라 일부 우량기업의 회사채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국채에 일방적으로 몰려있는 투자자들의 관심을 회사채로 분산시켜 한국은행이 국채를 이용해 장기금리를 끌어올리는 노력이 훨씬 용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