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된 후 미 국민은 물론 언론은 애국심으로 똘똘 무장한 듯했다. 워싱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버지니아주 비엔나시 도로변엔 10m 간격으로 성조기가 등장했다. 쇼핑몰에는 파병지원을 위한 모금용 자선냄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9·11 직후 성조기가 불티나게 팔렸던 행태가 재현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가 지난 27일자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전쟁지지도가 74%로 높아졌다. 특히 '강력한' 지지의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반전시위대의 목소리도 크지만 상당수 국민들은 거의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를 만든데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 뉴스전문 케이블TV들은 전쟁캠페인을 벌이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폭스TV 등 보수적인 케이블TV는 미군이 발표하는 전황만을 전하고 있다. 이라크 남부 바스라의 주민봉기나,이라크군의 바그다드 쇼핑몰 폭파 등 확인되지 않은 뉴스를 기정사실처럼 보도하고 있다. 이라크 현지의 참상은 전해주지 않는다.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인 러시 림보는 철저한 낙관론으로 국민들을 호도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언론에만 의존하다간 전쟁의 진실을 놓치겠다는 걱정이 들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을 전선에 보낸 미국 부모가 반전 시위에 앞장서고 있다는 뉴스는 신선했다. 보스턴에 사는 찰리 리처드슨 부모의 아들은 4년전 입대한 해병이다. 현재 바그다드로 진격하면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리처드슨 부모는 아들의 무사귀환을 바란다면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공격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전쟁은 또다른 전쟁을 부릅니다. 이라크 국민들이나 미국 국민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습니다. 저같이 자식을 전선에 보내고 반전 시위에 참여한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할 말을 하라고 격려했습니다." 29일 아침 NBC TV에 보도된 리처드슨 부모를 보면서 미국 언론이 조금씩 균형 잡힌 보도를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를 해봤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