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인에서 악연으로' 미국 상무부의 하이닉스에 대한 고율 상계관세 예비판정을 이끌어낸 미국의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한국 D램업체의 인연은 질기다. 80년대 초반 삼성이 반도체 산업 진출을 선언한뒤 기술, 인력부족으로 방향을잡지 못할때 기술을 전수하고 인력을 파견하는 등 산업지원에 협력적이었다가 한국반도체 산업이 공룡으로 부상하자 각종 꼬투리를 잡아 90년대초 덤핑분쟁에 이어 이번에 상계관세 예비판정을 유도한 것이 바로 마이크론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이크론은 작년초까지만 해도 하이닉스의 인수를 적극 추진해 왔다는점에서 이번 제소는 `못 먹는 감 찔러보기'식의 행태라는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한국 지원 = 마이크론은 80년대초 일본이 반도체 업체를 집중 육성하자 삼성을 파트너로 견제에 나섰다. 마이크론은 당시 연구인력 50여명으로 제품 조립단계에 불과했던 삼성전자와의인적교류를 통해 노하우를 전달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삼성전자에 대한 지원과는 달리 한편에서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와 힘을 모아 일본의 시장개방을 요구하며 `미일 반도체 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 반도체 업체가 주춤하는 사이 삼성전자는 마이크론과 인텔, IBM 등 반도체.컴퓨터업계의 도움아래 기술투자를 확대하면서 4메가, 16메가 제품을 잇따라 독자개발하는데 성공, 93년 D램 세계 1위에 도약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지원에서 견제로 = 삼성전자의 눈부신 성장을 질시한 마이크론은 태도를 돌변,92년 4월 현대전자, LG반도체(이상 현 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국내 D램업체를 덤핑혐의로 미국 상무부에 제소했다. 1년여의 조사끝에 상무부는 삼성전자 0.74%, 현대 7.19%, LG 4.97%의 덤핑 판정을 내렸고 무역위원회(ITC)는 산업피해 긍정판정을 내림으로써 반덤핑 관세 부과결정이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국내 3사는 이에 불복, 미국 국제무역재판소에 제소했고 상무부는 이 판결에 따라 95년 8월 삼성전자에 미소마진(0.22%), 현대 5.15%, LG 4.28%로 덤핑마진을 축소했다. 매년 덤핑여부를 재심하던 미국은 3년 연속 미소마진 판정에도 불구하고 반덤핑관세를 유지하다 우리나라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하이닉스-마이크론의합의를 계기로 2000년 9월 이를 해제했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버드 수정법이라는 통상법 조항에 따라 한국 반도체업체들이미국에 낸 관세중 1천600만달러를 돌려받음으로써 반덤핑 혜택을 톡톡히 보았다. ◆하이닉스와 `잘못된 만남' =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통합을 통해 출범한 하이닉스는 2001년 전세계 IT산업의 침체로 반도체 경기가 불황을 맞게 되면서 유동성위기를 겪었다. 삼성전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덩치를 키울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마이크론은 인수기업을 모색하던 하이닉스를 파트너로 선택했고 1년간 지루한 협상끝에 작년 4월메모리사업부문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맺는데 성공했다. 인수조건은 하이닉스채권단이 메모리부문 매각대금으로 29달러였던 마이크론의주식 1억860만주를 평균 35달러(현금 환산시 약 4조원)에 받고 신규자금 15억달러를운영자금으로 장기대출하며 직원 85% 이상을 고용승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합의에도 불구, 헐값매각 논란속에 노조, 소액주주의 반대가 이어졌고 이사회는 이를 부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마이크론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이사회에서 반대입장을 표명한 하이닉스협상단에 심한 배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과정에서 실시한 하이닉스 자산실사 결과는 훗날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를 공격하는 근거가 됐음은 자명한 일이다. (서울=연합뉴스) 유경수기자 yks@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