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지금같은 상황에서 미국으로부터 관세 보복을 당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미국 상무부가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해 무려 57.37%의 상계관계를 부과키로 예비 판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알려진 2일 아침 하이닉스 채권은행의 한 임원은 전화 통화에서 울화통부터 터뜨렸다. 그는 "정부가 그동안 뭘 했는지 궁금하다"고도 했다. 미국측 처사와 정부 무대책에 대한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먼저 한·미 양국이 입을 맞춘 듯 '굳건한 동맹관계'를 강조하는 시점에서 터져나온 이번 통상 마찰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비판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속없는 한국 외교의 현 주소를 그대로 노출했다는 지적이 많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정부로선 뒤통수를 맞은 셈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과 하이닉스 상계관세 부과가 비록 다른 사안이지만,지금처럼 양국간 동맹관계가 강조되는 시점에서 미국이 통상현안을 놓고 초강경 조치를 들고나온 것도 그렇고,한국이 거의 무방비 상태로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자연히 '정치 외교'와 '경제 외교'가 따로 노는 정부의 안이하고 소극적인 대응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는 형국이다. 또 다른 비판은 이번 관세 보복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데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5월 결렬된 하이닉스 매각협상이 결국 '상계관세 부과'라는 비수가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상계관세 부과가 7개월 간 매각 협상을 벌이면서 하이닉스의 경영·재무 현황을 속속들이 알게 된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제소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 정부와 채권단은 '아군'의 정보를 '적'에게 고스란히 노출하는 우를 범한 꼴이 됐다. 국제 통상협상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 국익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미국의 보복관세 부과로 하루종일 뒤숭숭한 가운데 2일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이제 '유엔 동의없는 전쟁 반대'라는 명분도,'통상마찰 해소'라는 실리도 한꺼번에 잃게 될 처지가 됐다. 김수언 경제부 정책팀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