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부대와 의료지원단의 이라크 전쟁 파견안이 2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국군 공병부대와 의료지원단의 네 번째 해외파병이 이뤄지게 됐다. 국군 해외파병은 1963년 9월 베트남 전쟁에 의료진 1백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을 보낸 것이 효시로 지금까지 4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베트남전에 의료진을 처음 보낼 때 여야는 대체로 원만한 합의를 봤으나 전투부대 파병안이 제기되면서 상당한 논란이 야기됐다. 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야당의 반대가 거세자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 열고 65년 3월13일 전투병 파병안을 가결했다. 이후 연인원 30여만명이 참전한 베트남전의 후유증으로 한동안 국군의 해외파병은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 그러나 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걸프전이 터지면서 다시 국군의 해외파병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걸프전 당시 유엔 결의에 의한 다국적군이 구성되고 전후 복구사업 참여를 위해 참전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자 비전투병 파병을 조건으로 파병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91년 의료지원단 1백54명과 공군수송단 1백50명(수송기 5대)이 파견됐다. 이후의 파병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참여 위주였다. 유엔 가입 이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일정한 몫을 담당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국회는 별다른 이의없이 파병안을 합의 처리했다. 93년부터 2002년까지 파병은 △소말리아(93년 공병) △서부사하라(94년 의료지원) △그루지야(94년 군 옵서버) △인도·파키스탄(94년 군 옵서버) △앙골라(95년공병부대) △동티모르(99년 보병부대) △키프러스(2002년 사령관 중장 1명) 등 7차례다. 또 9·11 테러사태 이후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도 해·공군 수송지원단과 의료지원단에 이어 지난 2월에는 공병부대인 다산부대가 파견돼 현재 아프간 바그람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