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rurara222@yahoo.co.kr 하루아침에 꽃이 피었다. 분명 그 전날 봤을 때만 해도 꽃봉오리가 보일듯 말듯 했었는데,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꽃들이 피는 속도는 아기가 '아장아장' 걷는 속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어느 날, 남쪽의 꽃들부터 '아장아장'의 속도로 북쪽의 꽃들까지 만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활짝 핀 꽃을 바라보는 마음은 여러가지 일 것이다. 하얗고 노란 혹은 분홍으로 빛나는 화사한 색들을 보면서 모든 시름을 잊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더욱 시름에 잠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국의 시인인 T S 엘리어트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이유도 이 상대적인 황량함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4월은 왠지 희망과 불안이 함께 있는 달이다. 두터운 겨울옷을 집어넣고 봄옷을 꺼내면서,지난 1월에 세웠던 계획을 새롭게 다지는 달이기도 하고,어쩐지 이번 한 해도 금방 가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초조해지기도 한다. 만약 해가 바뀌고 이렇게 4월이 됐는데도 하는 일이 배배 꼬이기만 하고 있다면,화사한 꽃들을 보는 가슴은 정말 잔인함으로 미어질 것이다. 나는 비틀거리는데 때가 되었다고 해서 잘도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엘리어트처럼 '잔인한 4월이여!'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잔인한 전쟁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지만,그것도 희망이 보이지 않기에 더욱 시름에 잠기게 하는 달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랴, '아장아장'의 속도로 꽃이 남쪽에서부터 올라왔듯이 어린 아이의 눈으로 꽃을 바라 볼 수밖에, 별안간 피어남으로써,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저 봄날의 꽃들을 반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가 되었으므로 꽃이 피었듯이 누구에게나 잔인한 때도,행복한 때도 있다는 자연의 법칙을 잊었었다면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달인가 싶다. 어쩌면 지금 있는 현실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