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장년층 대부분에겐 지금도 "절약이 미덕"이다. 제아무리 "소비가 미덕"이라고 해도 성장기에 먹던 수제비와 국수에 질려 밀가루음식이라면 신물이 나고,양말을 기워 신고 달력종이도 귀하던 걸 잊지 못하는 세대는 아무 것도 쉽게 버리거나 사지 못한다. 오래 돼 입지 않는 옷도 막상 버리려 들면 아까워 도로 집어넣기 일쑤다. "버리느냐 마느냐"로 고부간에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아직 충분히 쓸 수 있는데"와 "이젠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기 때문이다. 작고한 정주영회장은 생전에 "집도 없는데 차부터 사는 젊은이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거니와 냄비 프라이팬 그릇 할 것 없이 깨지고 부서지지 않는 한 그냥 쓰던 세대는 멀쩡한 그릇을 내버리고 유행따라 새것을 장만한다는 젊은 주부들의 태도가 도무지 납득이 안된다. 외환위기로 국민 대부분이 저승사자 앞에 불려간 듯 무섭고 혼란스러웠던 게 불과 5년여 전. 당시 불어닥친 구조조정 바람으로 인한 대량 실직 사태는 과연 소비가 미덕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듯했다. 재활용센터와 물물교환센터가 활성화됐는가 하면 할인점이 늘어나고 백화점 1층의 수입품매장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웬 걸,그토록 난리를 친 지 3년도 채 안돼 길가는 사람을 붙잡아 신용카드를 발급하고 갑자기 카드가 생긴 사람들중 일부는 외상이면 소도 잡는다고 여기저기서 쓰고 게다가 비싼 금리의 현금서비스까지 받았다. 뿐이랴. IT산업을 중심으로 한 벤처 열풍이 몰고온 대박 바람 탓이었을까,세일해도 50만원이 넘는 수입핸드백을 사기 위해 오전부터 백화점에 길게 줄을 서는 명품 광풍까지 몰아쳤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신용불량자 속출과 카드회사들의 부실로 인한 금융불안이라는 기막힌 사태로 이어졌다. 스무살 여대생에게 카드를 안기고 경제력도 없는 젊은 여성에게 할부라며 비싼 화장품을 사게 할 때 뻔히 보이는 일이었는데도 모른체 하더니 결국 사단이 난 것이다. 세계 경제의 앞날을 점칠 수 없고 국내 경기 또한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고 하는데도 한쪽에선 여전히 흥청거린다. 호텔식당은 북적거리고 그날 먹지 않으면 자칫 버리게 되는 이바지 음식값이 "적게 하면 5백만원,좀 신경써서 하면 8백만~1천만원"이라고 할 정도다. 사람마다 또 형편에 따라 삶의 스타일이 다르고 무조건 옛날식 절약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경기침체기일수록 적당한 소비가 미덕인 것도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입을 감안하지 않은 지출의 결과는 빚뿐이다. 잘만 활용하면 더없이 좋은 신용카드가 자칫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가 되는 것도 그런 때문이다. 물론 저축해봤자 이자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세금만 떼가니 "쓰고 보자"식의 사고가 늘어난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굳은 땅에 물 고일" 것이다. 부자가 되려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동구밖 나무에 아랫도리를 내놓고 한손으로 매달려 있듯 남의 이목 신경쓰지 말고 꼭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하는가하면 "큰 부자는 하늘에 달렸고 작은 부자는 부지런함에 달렸다(大富由天 小富由勤)는 말도 있다. 나노경제의 시대,작은 돈과 물자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자세를 지니는 일이야말로 가정경제와 나라경제 모두 튼튼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라 믿는다.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 '박성희의 나노경제'는 이번주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