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최악의 통상분쟁 시발..安德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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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德根 <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통상법 >
하이닉스반도체의 대미수출에 대해 미국 상무부가 57.37%에 달하는 예비 상계관세 판정을 내렸다.
이는 30∼35% 정도로 추산되는 이달 중순 발표될 유럽연합(EU)의 예비 상계관세 판정에도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다.
양국 모두 3∼4개월 후 최종판정에서 상계관세를 확정하겠지만,사실상 이제까지의 사건 흐름을 볼 때 최종판정에서 상계관세가 상당수준 인하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상무부는 외환위기 직후부터 보조금시행의 감시를 전담한 부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한국정부의 철강 반도체 분야에 대한 지원을 문제 삼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해 왔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하이닉스와 관련된 한국정부의 지원을 교역상대국의 보조금 관련 사안 중 최대 문제점의 하나로 지적하면서 줄곧 문제 삼아왔다.
그러나 그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 있는 한국정부에 대해 과중한 부담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가 2002년 11월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제소를 기화로 실로 엄청난 통상제재 조치를 하게 된 것이다.
현재 제시된 예비 상계관세율이 상당수준으로 감소되지 않는 한 하이닉스는 향후 수년 간 주력 수출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전망이다.
그간 35개 회사로 분리·매각과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거치고,지난해 말 21 대 1의 감자(減資)를 포함한 채무재조정을 수용하는 등 수차례 대폭적인 구조조정을 겪으며 자구노력을 해 온 하이닉스로서는 이제 주력시장 손실이라는 또 하나의 파고를 넘어야 할 처지에 있다.
기존의 여타 반덤핑이나 상계조치와 다른 점은,기업차원에서 영업상의 어려움 정도로 극복할 수 있었던 그간의 조치와 달리 이번의 통상제재 조치는 자칫 하이닉스의 운명과 이에 따른 한국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선례가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사실 상계관세 조치라는 것은 수입가격을 임의로 인상한다는 면에서는 반덤핑 조치와 다를 바 없으나,일개 민간기업의 덤핑판매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수출국 정부의 정책적인 조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많은 부담을 야기한다.
따라서 수입국 입장에서 상계조치의 발동은 매우 드물게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1995년부터 2002년 6월까지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이 총 1천1백61건의 반덤핑조치를 부과한데 반해 상계조치의 부과는 단지 84건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전형적으로 상계관세 조치는 선진국 정부가 개발도상국 정부의 보조금에 따른 수출상품의 가격경쟁우위에 대해 부과하는 양상을 나타낸다.
현재까지 인도 다음으로 한국정부의 보조금조치가 상계관세 조치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는데,그간에는 대미 철강수출 부문에서만 세 차례 상계관세 조치가 미미한 수준에서 부과된 바 있다.
이번 미국의 상계관세 조치 발동은 한국경제가 겪어 본 적이 없는 유례없는 통상마찰의 시발(始發)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조치 자체가 미칠 경제적 여파의 규모 뿐만 아니라,이와 사실상 연동해 진행되는 EU의 상계관세 조치에 대한 영향,그리고 WTO에서 조만간 진행될 조선산업 부문에 대한 보조금 분쟁에 대한 영향 등을 감안하면 이번 미 상무부 조치의 의의를 가늠할 수 있다.
또 이번 상계관세 조치에서 문제시하는 것이 하이닉스의 저가 수출이라기보다 한국정부가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시행했던 구조조정조치의 적법성이므로,그간 상무부가 문제를 제기해 오던 철강 및 제지 분야 등에서도 향후 유사한 제재조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67년 GATT에 가입한 한국이 실질적으로 수입시장을 개방하게 된 계기가 됐던 88년 쇠고기 분쟁 이후 가장 경제적 여파가 큰 통상분쟁의 시발이 될 것으로 우려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조속히 WTO에 제소해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한국정부의 적법한 지원조치와 시장원리에 의해 수행된 구조조정 부분에 대해 유예를 확보하는 방법이 최선으로 보여진다.
물론 최종 판정에서 극적으로 판정이 번복되거나 상당수준 상계관세가 인하될 수도 있겠으나,여기에 기대하기보다는 미진한 구조조정 조치를 가속화해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안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dahn@kdischool.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