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곤살레스와 盧 대통령 .. 이학영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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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곤살레스 전 스페인 총리.'보수'와 '개혁'의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돼 온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1982년 총선에서 '독재 유산의 청산'이라는 시대적 열망을 안고 스페인에 첫 사회노동당 정부를 출범시켰다.
3년 간에 걸친 내란 끝에 39년 스페인의 철권 지배자로 등장한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75년 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36년 간 총통으로 군림하며 스페인을 '공포통치'로 이끌었다.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전통 농업국가였던 스페인을 자동차 조선 등의 중화학공업 경제로 변모시키는 데 성공했지만,그 과정에서 소수의 독점 자본가 계층을 형성시키고 노동자 계층을 빈곤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프랑코 사망 이후 7년여에 걸친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혼돈을 매듭지으며 '민주화'와 '분배정의 실현'의 국민적 요구를 안고 등장한 것이 곤살레스의 좌파 정부였다.
그러나 막상 국가경영을 책임지게 된 곤살레스에게는 경제구조의 선진화와 국가경쟁력 제고가 더 큰 과제로 다가왔다.
낙후된 유럽의 변방국가에서 탈피해 독일과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EU)체제에 편입하지 않고서는 스페인 국민들이 갈망하는 분배의 '파이'를 도저히 늘릴 수 없음을 절감한 것이다.
이에 따라 스페인의 경제 시스템을 '유러피언 스탠더드'에 맞추고,더 나아가 스페인을 '유럽경제 중심국가'로 발돋움시키기 위한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정치력을 집중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반발하고 나선 것이 그의 핵심 지지계층이었던 노조집단이었다.
스페인 노조는 곤살레스를 '배신자'라고 몰아붙이며 총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나 곤살레스는 뚝심있게 개혁을 밀어붙여 EU에 가입하는 등 스페인 경제를 환골탈태시키는 성과를 일궈냈다.
항공 전자 정보통신 등의 기업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지원을 집중해 유럽 유수의 경쟁력을 길러내는 성과도 거뒀다.
요즘 한국이 처한 상황도 20여년 전의 스페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는 '구(舊)체제 개혁'을 열망하는 젊은 세대와 진보적 집단의 결집된 지지에 힘입어 출범했다.
사회주의자였던 곤살레스 전 총리와 시장경제를 내세운 노무현 대통령을 맞비교할 수는 없지만,재벌 주도의 시장체제에서부터 언론에 이르기까지 상당부분의 기존 질서가 '개혁 아젠다'에 올라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기존 체제에서 소외됐던 재야 소수파들을 권력의 핵심으로 대거 등용했고,인근의 열강 틈바구니에서 '경제중심국가'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비슷한 것은 여기까지다.
곤살레스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결과제로 핵심 지지기반인 노조와의 갈등을 정면 돌파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경제정책의 '코드'가 과연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기업 소유구조 개혁과 회계 투명성 제고 등을 '글로벌 스탠더드'의 이름으로 추진하면서도 기업경쟁력의 또다른 축(軸)인 노사문제에서는 '약자에 대한 보호'를 구실로 기업측의 양보를 강요하고 있다.
노조의 불법 분규에 대해서까지 기업측의 고발권을 제한한 두산중공업 분쟁 중재과정이 단적인 예다.
그렇지 않아도 노동시장의 유연성 부족이 한국 기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국제 사회의 지적을 받아온 터다.
노 대통령이 혹시라도 선거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계층에 대한 '선거 빚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면 곤살레스의 사례에서 참고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을 성싶다.
그가 빚을 갚아야 할 대상은 국민 전체와 '역사'이지,특정 계층이 아니기 때문이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