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을 때는 적절한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온이 10도 전후일 때 나무 심기가 가장 좋다고 한다.
남부지방은 3월 하순에서 4월 초사이에 평균기온이 10도를 넘는다.
나무를 심은 뒤 토양 온도를 유지하거나 높여주기 위해 나무 주위를 낙엽 등으로 덮어주면 좋다.
방송인 박은지가 '후배' 고(故)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를 추모하며 "뿌리 깊은 직장 내 괴롭힘 문화, 이제는 끝까지 밝혀져야한다"고 밝혔다. 박은지는 MBC 기상캐스터 출신이다.1일 박은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MBC 기상캐스터 출신으로 너무 마음이 무겁다. 본적 없는 후배지만, 지금쯤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글과 함께 고인의 사망 후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유서가 나왔다는 기사를 캡처해 올렸다.그러면서 "언니(박은지)도 7년이라는 모진 세월 참고 또 참고 버텨봐서 안다. 그 고통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운지"라며 "도움이 되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며 "뿌리 깊은 직장 내 괴롭힘 문화 이제는 끝까지 밝혀져야"라고 강조했다. 박은지는 지난 2005년 MBC 공채 기상캐스터로 입사했다가 2012년 프리랜서로 전향했다.2021년 5월 MBC에 입사한 고인은 지난해 9월 유명을 달리했다. 매일신문 보도에 따르면 고인 휴대폰에선 원고지 17장 분량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동료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족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가해자로 지목된 2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한 네티즌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서울특별시경찰청 서울마포경찰서와 고용노동부에 안형준 MBC 사장과 부서 책임자 등을 고발했다.MBC는 "고인과 관련된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라 대응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고인이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자신의 고충을 담당부서(경영지원국 인사팀 인사상담실, 감사국 클린센터)나 함께 일했던 관리 책임자들에 알린 적이 전혀 없
"제 앞 사람이 사려는 빵을 다 사가서 너무 럭키하게 제가 새로 갓 나온 빵을 받게 됐지 뭐예요?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야!"지난해 최고의 밈(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으로 꼽히는 장원영의 '럭키비키' 마인드. 불운한 상황도 달리 보면 행운 가득한 순간이 된다는 이 긍정적 사고는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고, 온라인은 물론이고 오프라인에서도 많은 이들의 입에서 "럭키비키잖아~"라는 말이 나오게 했다.'럭키비키 신드롬'에 이어 이번에는 장원영이 언급한 책 '초역 부처의 말'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인기 돌풍 중이다.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장원영은 "읽으면 위로가 된다"면서 부처의 말을 현대어로 재해석해 옮긴 이 책을 언급했다. 덱스가 진행하는 유튜브에서도 '초역 부처의 말'을 소개하며 "(앞서 추천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보다 더 좋았다. 난 이게 너무너무 좋았다"고 애정을 드러냈다.'어떠한 사상이나 철학도 모두 버린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고 밝힌 그는 "나만의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부터 집착이 고통을 낳는다"라며 2004년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성숙한 발언을 조목조목 이어갔다. "보상 없는 고통은 없다"라는 마음으로 연예계 생활 및 개인의 삶에 임하고 있다고도 했다.그의 깨우침은 '럭키비키' 이상의 파급력을 보였다. '초역 부처의 말'은 교보문고 1월 넷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2위를 기록했다. 전주 대비 판매량이 56.3% 급증했다. 예스24에서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꺾고 1월 5주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장원영이 지난해
“저기요, 계십니까! 좀 나와보세요!”1909년 어느 여름날 밤, 프랑스 파리 근교의 커다란 저택 앞. 대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온 중년 여성은 낯선 청년과 마주쳤습니다. 청년의 옆에는 그녀의 아들이 술에 만취해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아드님 친구인데요, 술을 마시고 너무 취해서 제가 데려왔습니다.” “참, 매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고마워요. 다음에 밥이나 한 번 먹으러 와요.”어머니와 아들의 친구가 한 번쯤 나눌 법한 평범한 대화. 그런데 둘 사이의 분위기가 왠지 이상했습니다. 그녀가 아들을 부축해 들어간 뒤에도, 청년은 닫힌 대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청년은 훗날 회고했습니다. “내가 꿈꾸던 여인을 만났다”라고요. 가슴이 뛰었던 건 그녀도 마찬가지. 그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를 만나고 두 번째 청춘이 찾아왔다.”그녀의 이름은 수잔 발라동(1865~1938). 나이는 44세였습니다. 반면 청년 앙드레 우터(1886~1948)는 고작 23세로, 발라동보다 스물한 살이나 어렸습니다. 심지어 그는 발라동의 아들보다도 세 살 아래였습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은 세계 예술계에 하나의 혁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몽마르트르의 여인’으로 불렸던 화가 수잔 발라동의 예술과 파란만장한 삶, 그리고 사랑 이야기. 어머니라는 이름‘아버지: 없음.’1865년 9월 제출된 발라동의 출생증명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 시절 가난한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이런 기록은 ‘사형 선고’로 받아들여지곤 했습니다. 태어난 아기 100명 중 4명이 버려지던, 먹고 살기 힘든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