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자본이 투입돼 지난 2월 문을 연 경기도 수원역 대합실. 7개 매표소와 2백여석의 의자를 제외하곤 백화점 패스트푸드점 등 상업시설이 둥그런 대합실을 애워싸고 있다. 홍익회 직원 염승림씨(47)는 "주말이면 열차이용객과 쇼핑객이 뒤엉켜 대합실은 아수라장이 된다"며 "민간자본 유치도 좋지만 백화점에 묻혀 철도역이 제기능을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역사현대화를 내세워 전국적으로 민자유치를 통한 역사재개발을 서두르는 철도청과 '철도역=핵심상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유통업체 사이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서울역 용산 청량리 왕십리 성북 신촌 등 서울시내 주요역뿐만 아니라 평택 의정부 등 전국적으로 민자역사 개발붐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이들 민자역사가 지나치게 상업시설 위주로 재개발되는 바람에 역 본래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주변 교통체증도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이로 인해 민자역사가 도심교통의 골칫거리로 지목되고 있다. 이는 민자사업자가 역사를 개발할 경우 전체 면적(건축연면적)의 무려 90%까지 상업공간을 활용할 수 있고 공공을 위한 역무시설공간은 고작 10%만 할애하도록 돼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서울시립대 남진 도시공학과 교수는 "동인천역처럼 실제 상업공간이 전체 역의 94%를 차지하는 사례도 있다"면서 "상업시설과 역무시설 비율이 7 대 3 정도인 외국과 비교할 때 한국 철도역의 상업시설허용비율은 사실상 '특혜'"라고 지적했다. ◆ 역이용객보다 쇼핑객이 우선(?) =수원역을 자주 이용하는 이정균씨(39.사업)는 "주말이면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대합실이 만원인데 줄을 비집고 들어오는 쇼핑객과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며 "사람들을 백화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백화점 입구와 대합실을 분리하지 않은 것 같다"고 불평했다. 홍익회 염승림씨는 "수익금을 철도청 직원 원호사업에 쓰는 홍익회도 민자사업자가 역을 관리하게 되면서 찬밥이 됐다"며 "가게자리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노점상처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철도청 김영수 서기관은 "역무시설 10% 확보 규정을 지켰기 때문에 문제될게 없다"고 주장했다. ◆ 도시 교통혼잡의 새 골칫거리 =모범택시기사 배병수씨(49)는 "예전부터 수원역 주변은 교통정체가 심각하기로 유명한데 이곳에 민자백화점을 유치한 철도청이 과연 대중교통운영기관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민자개발 이후 택시기사들이 역근처에 가기를 꺼릴 정도로 교통난이 파국적"이라고 전했다. 안양역과 12m짜리 이면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래미안아파트의 경비실 관계자는 "저녁 때만 되면 단지앞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한다"고 밝혔다. ◆ 철도이용객을 위한 공공시설 공간 늘려야 =남진 교수는 "일부 민자개발역의 경우 역무시설 '10% 규정'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역무시설 공간을 가능한 한 키움으로써 백화점 등 상업공간(90%)을 이에 비례해서 최대한 늘리는 방법을 쓰고 있다"면서 상업공간의 절대면적을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김광중 선임연구원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시교통정책차원에서 철도청의 무분별한 민자역사개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