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안양교도소 앞에서 한시간쯤 기다렸을까. 헐렁한 옷차림으로 출소를 하는 삼진기계의 방종오 사장(43)은 뜻밖에도 환하게 웃으며 걸어나왔다. 1년10개월. 최고의 유리가공기계를 만들어내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한시도 쉴틈 없던 그가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옥살이를 해냈을까. 그동안 두 번 면회를 갔는데 그 때마다 방 사장은 자신의 억울함을 피 토하듯 쏟아냈다. "기업을 살려보려고 밤낮없이 죽도록 일한 결과가 바로 이런 겁니까"라며 가슴을 치곤 했다. 하지만 이날 출소하는 그의 입가엔 억울함보다는 굳은 의지가 서려있었다. 앞으로의 설계를 자세히 들어보고 싶었지만 옆에서 계속 눈물을 훔치는 그의 아내를 위해 먼저 자리를 떠야 했다. 11년 전 기자가 부천 오정동에 있는 삼진기계를 처음 찾아갔을 때 그는 유리천공기를 개발하느라 기계 밑에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 기름 묻은 손으로 덥석 악수를 했다. 당시 그는 신혼인데도 밤잠을 자지 않고 유리천공기 개발에 땀을 쏟고 있었다. 이렇게 땀 흘린 덕분에 그는 한국에서 최초로 유리천공기를 일본으로 수출하는 중소기업의 사장이 됐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의 가마코 등에 납품하는 등 5개 선진국으로 기계를 수출하는 기업인이 됐다. 그는 기계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이처럼 기계밖에 모르는 그가 사기죄로 기소됐을 땐 어이가 없었다. 그가 걸려든 건 금융회사로부터 갚을 의사가 없으면서 돈을 대출해갔다는 것 때문이었다. 실제 그 시설자금을 빌린 뒤 방 사장을 한번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흰색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감기에 걸렸느냐고 묻자 그는 일주일 전 횡성에 있는 공장에서 유리 강화로(强化爐)를 개발하느라 새벽까지 일하다 톱니바퀴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얼굴이 찢겨져서 그랬다는 거였다. 처음부터 돈 떼먹을 생각을 한 사람이 어떻게 새 기계를 개발하느라 얼굴까지 찢기도록 일했을까. 출소한 지 한 달만인 지난 3일 과천의 순대국집에서 다시 만난 방 사장은 다시 의욕에 찬 중소기업인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는 출소하자마자 자신이 개발해서 공급한 강화로 업체를 찾아다니며 옥살이 기간 동안 못 다한 애프터서비스를 해줬다는 거였다. 이날 그는 오산에서 3년 전 공급한 강화로를 밤새 고쳐준 뒤 올라오는 길이라고 했다. 다시 열정에 찬 그를 보자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 빈털터리가 된 그에게 투자하겠다는 기업인이 나타나는 덕분에 그는 곧 강원지역에서 강화유리공장을 가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드디어 잠시 접었던 그의 꿈이 다시 비상할 태세다. 그러나 기자가 그동안 기업하기가 너무 힘겹지 않았느냐고 거듭 묻자 그는 "고생한 아내와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의지에 찬 표정으로 입을 꽉 다물었다. 중소기업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