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기업 정책이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차단'과 '소유구조 개혁'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드러나면서 앞으로 개혁 정책이 재산권 보호를 명시한 헌법 정신과 충돌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자연히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7일 금융감독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를 끝으로 주요 경제부처들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마무리되면서 정부가 그동안 강조해온 '시장개혁'의 핵심이 인위적으로라도 대기업의 금융회사 지배를 막는데 과녁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위와 공정위 등은 실제 이번 업무보고를 통해 대기업 소속 금융사가 보유한 자기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제한을 강화하고 2금융권에 대해서도 대주주 자격유지제를 도입하며 한 발 나아가 위법사실이 있을 때는 강제적인 금융사 계열분리 청구제까지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이같은 새 정부의 개혁 정책이 당장 기업의 자유로운 사업 진출을 제한해 경쟁력을 제약할 뿐더러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규제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많다. 사실상 대기업의 금융회사 경영을 완전 차단하는 '3중 족쇄'를 채우는 셈이기 때문이다. ◆ '대기업은 금융에서 손떼달라' 금감위는 보험 증권 신용카드 등에 대해서도 은행과 마찬가지로 대주주의 자격요건을 심사하는 대주주 자격유지제 도입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이것이 어렵다면 대주주가 바뀔 때마다 출자자 요건을 따로 심사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대기업들이 그동안 2금융권 계열사를 통해 '부당하게' 다른 계열기업을 지배하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현행 은행법은 은행 주식을 법에 정해진 한도를 초과해 보유하면 반기마다 요건을 심사토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같은 규정을 2금융권으로 확대 적용, 대주주 자격유지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도입되면 부채비율 및 신용공여한도 규정 등의 요건에 맞지 않는 기존 대주주의 주식처분을 명령해야 하는데 이는 사유재산권 침해로 연결돼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이에 따라 김영주 재정경제부 차관보를 팀장으로 정부측 실무자, 재계추천 인사, 시민단체 관계자, 학계인사 등 총 9명으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 오는 11일 첫 회의를 열기로 했다. 관심은 이들 태스크포스에서 정부의 '개혁 원리주의'가 어느 정도 수용될 것인가로 모아진다. 당장 의결권 제한과 관련해 재계는 '현행 유지'를, 시민단체는 '한도와 예외조항의 동시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내 입장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재경부는 의결권 한도 대신 예외규정을 줄이자는 시각인 반면 공정위는 시민단체와 같이 한도와 예외규정을 둘 다 손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보다 훨씬 의견 대립이 심각한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와 대주주 자격유지제 등은 어떻게 결론이 나든 입법과정에서 또 한차례 논란을 빚을 전망이다. ◆ 지분현황 공개도 위법 소지 공정위는 기업에 대한 시장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대기업집단 소속 계열사들의 지분 현황을 상세하게 공개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우선 4월말까지 각 그룹들이 제출하는 계열사별 지분구조 및 출자현황 자료를 받아본 뒤 이를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표로 만들어 공표하기로 했다. 예컨대 세로축에 총수와 친인척 및 계열사를 쓰고 가로축에는 그룹 계열사들을 배치해 각 계열사별로 총수 등의 지분소유 현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만든다는 것. 그러나 현행법상 이같은 조치는 불가능하게 돼 있다. 공정거래법 62조에선 '업무상 취득한 사업기밀을 공무상 목적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비밀준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먼저 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재계와 국회의 반응에 따라 지분구조 공개가 늦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수언.박수진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