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전세계의 이목은 '북한핵'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라크전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미국이 북한을 다음 '목표'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들이 국제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초 국정연설을 통해 북한을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이 때문에 이런 설(說)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존 볼튼 미 국무부 차관과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9일 "북한이 이라크와는 다르나 이라크전이 던지는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며 북한의 핵무장 가능성을 경고했다. 북핵 위기가 현실화될 우려가 높아짐에 따라 우리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새 정부가 추구하는 '동북아 중심'이나 '평화 번영정책'은 '물 건너 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또 남북 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도 '상위 변수'인 북.미 관계의 회복이 급선무라고 판단, 대미 외교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전 '대등한 한.미 관계'를 강조하다가 최근 '한.미 동맹 우선'을 외치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미국을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당초 우리 정부는 북.미 직접 대화를 주장하다가 미국의 '다자 회담' 주장을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노 대통령은 이같은 상황들을 '현실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일 국회 국정연설에서 이라크전 파병동의안 통과를 호소하면서 "세계질서는 명분에 의해 움직여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명분이 아니라 현실의 힘이 국제정치를 좌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우리의 자세변화로 인해 일단 북한 핵문제는 평화적,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큰 틀은 마련된 셈이다. 노 대통령이 취임 후 부시 대통령과 가진 두 차례의 전화 통화에서도 이같은 양국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날 가진 비공개 회의에서 대북 비난성명 등 북한을 자극할 만한 구체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기로 한 것도 '평화적 해결'에 힘을 보태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미국이 '평화적 해결'을 강조한다고 해서 대북 경제제재나 군사적 공격을 완전히 배제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미국이 외치고 있는 '평화적 해결'은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술적 차원에서 대북 제재나 군사적 공격 위협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켈리 차관보도 이날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면서도 "테이블 위에서 치워진 특정한 선택방안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분명하고 검증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핵무기를 폐기해야만 진정한 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못박았다.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대북협상은 없다"는 입장에서 단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라크전 승리로 미국의 이같은 태도는 더욱 확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