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계 투자회사 크레스트 시큐리티스의 모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 관계자가 SK(주) 문제와 관련, 참여연대를 접촉한 것은 외국자본이 반재벌 정서를 이용해 국내기업을 적대적으로 인수합병(M&A)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물론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장하성 운영위원장은 소버린 관계자를 만나기는 했지만 지원요청을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의 경영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텔레콤 주식을 갖고 있는 SK(주)의 1대주주 관계자를 만난 것이라는게 장 위원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재계는 외국계 자본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시민단체를 등에 업으려고 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경악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은 정부의 각종 규제 등으로 인해 대주주의 지분율이 크게 낮아진데다, 시민단체 등이 조성한 반재벌 분위기로 소액주주들의 지원을 받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어서 외국자본들의 적대적 M&A가 본격화될 경우 경영권 방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외국자본들은 기업을 직접 경영하기보다는 단기차익을 노리는 사례가 많아 국내 기업들이 커다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SK㈜의 지분을 8.64%까지 사들인데 이어 10일 SK㈜ 주식 3.75%를 추가로 매입,지분율을 12.39%로 높인 크레스트는 매수목적에 대해 여전히 '수익창출'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크레스트의 모회사인 소버린측이 지난 9일 참여연대 장 위원장을 만나 경영권 교체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SK㈜의 경영권 향방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국내 증권시장에서는 크레스트가 SK㈜에 대해 보유중인 SK텔레콤 주식(20.85%)의 매각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를 액면 그대로만 보면 크레스트 입장에서는 SK㈜의 현금흐름 개선을 통한 주가상승을 노려 그야말로 단기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또 그동안 국내 주요 대기업에 대한 지배구조 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온 참여연대 입장에서도 SK텔레콤의 지배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99년에도 해외자본과 연계해 'SK텔레콤의 유상증자 반대' 활동을 벌인 적이 있다. 또한 참여연대는 그동안 제일은행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등을 상대로 20여건의 공익소송을 제기하고, 최근에도 주요 그룹을 대상으로 소송을 벌이는 등의 기업감시 활동을 벌였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들의 경영투명성이 높아지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대기업에 대한 지나친 '흠집내기'라는 지적도 받아 왔다. 이같은 사태는 특히 외환위기 이후 참여연대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출자총액 규제 강화' 등의 기업활동 규제조치가 가져온 결과라는게 재계의 분석이다. 또한 '부채비율 2백% 규제'로 인해 기업들의 주요 자금줄이 기존의 은행권에서 증권시장으로 바뀐 것도 기업들의 경영권 안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은행권에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 반면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에 얽매이면서 자금력 있는 해외자본의 '사냥감'으로 떠올랐다는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그동안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각종 규제들은 사실상 '월스트리트 스탠더드'인 경우가 많았다"며 "이제는 국내 기업들이 안정적인 경영권을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제반 규제들을 과감히 철폐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