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0년대 미국에 처음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고속도로였다. 8차선,10차선 고속도로가 동서남북으로 뚫려 있고,수많은 차들이 교통신호 받는 일 없이 시원하게 질주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지금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 보면 내가 60년대 미국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인상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이 인터넷 고속도로를 완전하게 구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1천4백만가구 중 1천만가구에 고속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어 보급률은 무려 70%에 달한다. 미국의 보급률은 한국의 3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인터넷에 관한 각종 지표들에 있어서 한국은 단연 세계 제일이다. 이처럼 한국은 인터넷의 최강자이나 정보통신(IT) 응용에 있어서는 안타깝게도 세계 최강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IT 투자의 비율은 세계에서 30위 정도이고,기업의 컴퓨터 이용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인터넷 이용의 높은 지표들은 모두 개인의 인터넷사용실적 때문에 나타난 것들이다. 반면,집단적으로 컴퓨터를 이용하는 수준은 매우 낮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컴퓨터 이용 수준은 매우 낮다. 개개인은 똑똑하지만,집단이 되면 잘하지 못하는 우리 한국인의 특성이 여기에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의 저서 'Next Society'에 아주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실용화한 것은 1769년이었는데,진정한 의미로 사회 구조를 변화시킨 산업혁명은 그로부터 60년 뒤인 1829년에 증기기관을 이용해 기차를 만든 때부터였다고 한다. 피터 드러커는 정보산업의 혁명도 이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컴퓨터가 실용화된 것은 1946년이었는데,60년이 지난 2000년대 초에야 비로소 사회전체에 큰 변화를 일으킬 정보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드러커에 의하면 정보혁명은 전자상거래가 몰고 올 것이라고 했다. 기업간 전자거래의 예를 보자.치약을 만드는 A사와 치약을 판매하는 B사의 경우는 이렇다. B의 상점에서 A사의 치약이 팔릴 때마다 그 정보는 A사로 전달됨으로써 A사와 B사간의 주문 요청·배달 요청이 없어도 컴퓨터가 적당한 시기에 A사가 B사로 몇개를 옮겨야 할 것을 알려준다. B사에서는 치약이 하나씩 팔릴 때마다 계산대에서 자동적으로 치약값을 계산해 A사로 송금된다. 그러면 A사와 B사간에는 판매·구매에 대한 인원이 필요 없고,적절한 재고량이 유지되며,외상 매출 때문에 발생하는 운영자금도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기업간의 모든 거래가 온라인으로 자동화되면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은 획기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기업간 거래가 온라인화되면 기업의 조직과 형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기업이 모두 이러한 상태가 됐을 때 우리는 진정한 지식정보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런 혁명을 이룰 수 있을까? 전자상거래를 하자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상품코드와 거래 서식을 표준화하고,디지털 데이터 베이스를 만든 다음,전자 카탈로그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백만개가 넘는 구멍가게까지 이렇게 하려면 시간이 너무 걸려서 현실성이 낮다.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그것은 '절충형 산업 데이터 베이스'를 만드는 일이다. 자기 회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개하는 카탈로그가 있는 회사를 다 불러모아 현재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카탈로그를 복사해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하고 상품명을 키워드로 해 거기에 부가한다. 그 상품명도 일일이 코드화하려면 복잡하므로 일상용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쉽다. 이러한 데이터 베이스가 완성되면 엄청난 경제적 가치가 생겨난다. 이 정보를 가지고 우선은 팩스나 전화를 이용해 상품거래를 재래식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에는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데이터 베이스가 이미 상당히 갖추어져 있다. 문제는 이 데이터 베이스들을 묶어서 모든 기업이 활발히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교육하고,계몽하고,선전하고,추진하는 일들을 누가 나서서 하느냐 하는 일이 남아 있다. ytlee@trige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