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SK와 참여연대 .. 김정호 < 산업부 대기업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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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가 다시 외국 자본의 표적이 됐다.
몇 년 전에는 타이거펀드라는 국제 투기자본이 SK텔레콤을 흔들어놓더니 이번엔 소버린자산운용(크레스트 시큐리티스의 모회사)이라는 유럽계 펀드가 SK㈜를 위협하고 있다.
SK의 지분 구조가 다른 그룹에 비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취약하고 기업들은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각종 규제에 묶여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을 호소해오던 터.SK 소식을 듣고 놀랐다기보다는 오히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SK㈜ 사태 추이를 지켜보면서 정작 놀랄 일은 다른 곳에서 터져나왔다.
소버린이 주식을 매집해 SK㈜의 제1주주가 된 뒤 참여연대를 가장 먼저 찾았다는 것.이 일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참여연대와 소버린의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인 장하성 교수는 윤곽을 읽을 수 있는 몇 마디를 말했다.
"소버린은 참여연대가 지난 수 년간 SK텔레콤의 경영문제를 일관되게 제기해왔다는 데 주목한 것 같다"는 것.SK㈜의 주식을 매집한 소버린이 SK텔레콤과 관련된 이야기를 어떤 형태로든 꺼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해진다.
SK㈜는 SK텔레콤의 지분 20.85%를 갖고 있다.
시가로 따지면 3조원이 넘는다.
항간의 소문대로라면 소버린은 SK㈜의 경영에 간여해 이 주식을 팔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당연히 SK㈜의 현금흐름이 좋아져 주가가 크게 오를 수 있다.
반면 SK텔레콤은 SK그룹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된다.
소버린은 SK㈜의 회사가치가 오를수록 이득을 거두게 마련이다.
참여연대에는 그동안 줄기차게 강조해오던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선을 쉽게 이룰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증권시장에 떠도는 시답잖은 시나리오의 하나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외국 언론들마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는 것은 과거 타이거펀드의 SK텔레콤 공격 당시 참여연대의 '역할'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제 집중투표제 등에서 타이거펀드와 공동보조를 취한 참여연대가 SK텔레콤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는 사이 타이거펀드는 SK상사와 SK㈜ 등에 지분을 되팔아 7천2백여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타이거펀드는 당시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고 지금은 소버린이 SK㈜의 기업가치 제고를 부르짖고 있다.
모두 '주주에게 이로우면 모두에 이롭다'는 '주주가치 이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는 시민단체들이 표방하고 있는 명분과도 더없이 잘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주주가치 이론은 미국 재무부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등과 의기투합해 전세계,특히 개발도상국에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미국식 기업제도 개혁 방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조차 기업 지배구조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주주가치론에 근거한 재벌개혁은 재벌의 기업지배권을 약화시키게 된다.
기업들은 경영권 유지에 최우선의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투자보다는 현금을 보유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안정 지분 확보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들은 이런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여연대가 SK㈜의 경영권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소버린의 요청이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장 교수의 발언은 여전히 취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