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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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의 유명한 단편소설 '목걸이'에는 마담 르와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스스로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좀더 지체가 높은 집안에 시집가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던 중, 어느 날 남편 직장의 장관이 주재하는 파티에 초대를 받게 된다.
그녀는 남편이 새로 사준 옷을 입고는 친구로부터 목걸이를 빌린다.
귀가길에 목걸이를 잃어버린 르와젤은 거액을 빚내 새 목걸이(사실은 가짜임)를 사서 돌려준다.
10년 동안 온갖 궂은 일을 다하며 빚을 갚은 뒤 그녀는 "나는 매우 기쁘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소홀히 한 채 허영에 들떠 살아가는 동안은 불행했으나,비록 노동이지만 자신의 소임을 다했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정말이지 "행복이 무엇이다"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행복은 상대적일 뿐더러 각자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케르테스는 자전적 소설 '운명'에서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서도 행복이 있었다고 했고,몇년 전 영국의 한 대학 연구팀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며칠전 '2003년 한국사회 국민의식과 가치관에 관한 조사연구'를 발표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삶의 행복지수를 66.5점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5년후의 행복도는 77.2점으로 비교적 밝게 미래를 전망했다.
행복도는 소득과 학력에 비례해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의 외형이 커질수록 일반적으로 행복지수가 높아진다고 얘기하나 그렇다고 반듯이 동반곡선을 그리지는 않는 듯하다.
누구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뻗칠 때,한송이의 꽃향기를 맡을 때,신비로운 가락이 가슴에 와 닿을 때,이웃의 감동적인 사연을 접할 때 뜻밖에도 무한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행복지수를 물질적인 '소유의 양'으로만 평가한다면 이처럼 불행한 일이 없을 게다.
소유의 만족은 끝간 데가 없어서다.
지금 이 순간 지난 날의 행복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꼭 물질적으로 풍족했던 시절만은 아닌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