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특별위원회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들로 채워졌다는 비판이 거세다. 벤처확인제도의 조기 종료,고유업종제도의 단계적 폐지 등 종래의 것을 재탕 삼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첫 보고라는 사실 자체가 주는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참여정부 중소기업정책의 방향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기특위 관계자는 이번 업무보고의 바탕이 '자율'과 '경쟁'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정책을 '보호'와 '지원'보다 '시장'에 맡기는 방향으로 끌고가겠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쉽도록 "맹목적인 중소기업 보호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현재의 벤처 부실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는 설명까지 곁들인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의 방향을 듣고 보면 좀체 가시지 않는 의문이 생긴다. 중소기업정책은 이렇게 선진적(先進的)으로 가려고 하면서 왜 대기업정책은 그 반대로 가는가 하는 문제다. 비슷한 논리로 "맹목적인 대기업 규제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현재의 투자 부진과 경영권 위협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는 지적이 많고 보면,대기업정책도 '규제'와 '간섭'보다 '시장'에 맡기는 방향으로 끌고가겠다고 할 법도 한데 말이다. 중소기업은 '시장'에 맡기는 방향으로 가고,대기업의 경우는 '시장'에 맡길 수 없으니 정부가 나서서 시시콜콜 규제해야 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중소기업정책을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기겠다고 나설 정도면 그 '시장'은 '꽤 괜찮은 시장'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혹시 중소기업에 대해 말하는 '시장'과 대기업에 대해 말하는 '시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일까. 현재 45개에 이르는 중소기업 고유업종을 3년 이내에 없애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이 말은 대기업이든 중견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모든 업종의 진입 장벽을 없애겠다는 취지이니 '시장'은 하나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여기서 기업정책의 분명한 모순이 발견된다. '하나의 시장'을 두고 편의(?)에 따라 '신뢰'와 '불신'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보고서는 대기업에는 규제 완화를,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과다한 보호와 정부 개입의 축소를 제시했다. 대기업에 대해 규제 완화를 말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시장'에 맡기라는 의미다. 중소기업에 대한 과다한 보호와 정부 개입 축소는 어느 정도 '보호'와 '개입'의 불가피성은 인정하지만 '시장친화적(market-friendly)'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말이다. 달리 표현하면 시장기능을 보완하는 한도 내에서의 '보호'와 '개입'이 바람직하다는 얘기인 것이다. 사실 선진적인 기업정책은 투자와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그런 논리와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직접적인 기업규제는 있을 수 없다.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와 개입도 따지고 보면 그 근본논리가 투자와 경쟁의 '싹'을 키운다는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금의 우리는 출자총액제한제도에서 보듯 대기업에 대해서는 되레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려 한다. 투자 위축은 물론이고 경영권 위협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한편 중소기업의 경우는 시장친화적인 '포스트 벤처'나 '차세대 중기정책'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하기 좋은 말로 '시장'에 맡기겠다고 나온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기업정책은 '엉뚱한 번지수'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런 대기업정책과 중소기업정책이 지금의 경기상황과 조금이라도 어울리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그 헷갈림은 더하기만 하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