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열심이에요.잘 될 겁니다." 기업 경영자들을 만나 직원들이 어떠냐고 물으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들 답했다. 하지만 요즘은 전혀 달라졌다. 대부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큰 일이에요.정신들 못차리고 있어요." 터놓고 하는 얘기겠지만 어떨 때는 자식 욕을 하는 부모처럼 느껴져 의아할 때가 적지 않다. 물론 변화에 둔감하고 나태한 직원들이 여전히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영자들이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것 같다. 단기실적주의 풍토가 번져가면서 조급증이 늘어가는 모양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이제 막 사장 자리에 앉은 사람일수록 더 심하게 나타난다. 자신은 개혁 마인드를 갖고 있는데 '게으르고 무능한' 부하들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입에 달고 산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사장들의 마인드에 문제가 있다. 새로 리더가 된 사람들 눈에는 다른 이들이 모두 그렇게 보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사장이든 리더가 된 사람은 자기 인생에 있어 정점을 살고 있다. 산꼭대기에 올라있는 것이다. 그 흥분도를 생각해보라.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고 월급 수준이 문제될 게 없다. 휴일이나 휴가가 없어도 즐겁다. 그러나 직원이나 부하는 어떤가. 그들은 여전히 언덕 아래에 있다. 밥을 못 먹으면 배가 고프고 돈을 받지 않으면 빚이 늘고 휴일이나 휴가가 없으면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리더가 내세우는 고상한 비전이나 역사의식을 생각할 수도 없는 형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리더와 '코드'를 맞추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부하들의 충성과 헌신을 이끌어낼 수 없다. 오히려 '변화하지 않는 수구 집단'이니 '철밥통'이니 비난하는 과정에서 '자기 새끼'들의 자신감만 꺾게 된다. 이렇게 자신과는 감성상태가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수준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 '초보 리더'들을 기다리는 함정이다. 이 함정에 빠지면 리더는 새로운 것에만 집착하게게된다. 지금의 부하나 조직원들을 교육시켜 바꿔볼 생각은 안하게 된다. 직원들의 마음가짐은 리더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게 돼 있다. 지난 2000년에 나온 세계노사관계보고서(WIGN&허드슨연구소)에 따르면 전세계 직장인들 가운데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뼈를 묻겠다'고 대답한 사람은 42%에 불과했다. 31%가 '덫에 걸려 할 수 없이 일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고 27%는 '언제든 직장을 옮기겠다'고 답했다. 자신이 사장이 됐다고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착각이라는 얘기다. 더 중요한 것은 충성할 준비가 돼있는 나머지 42%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이다. 곳곳에 새 리더가 넘치는 시절이다. 새 장관들이 모두 뽑혔고 주요 보직도 채워졌다. 기업들도 주주총회를 통해 사장이나 경영진을 새로 선임했다. 이 새 리더들이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벌써부터 목격되고 있다. 공직사회에서 빚어지는 상하갈등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9·11사건 당시 뉴욕시장으로 있었던 루돌프 줄리아니는 자서전에서 "위대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라"고 말했다. 자기 밑에 못난 사람들을 거느리느냐,자신 주위에 위대한 사람들을 둘러세우느냐는 리더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사람들은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믿어줄 때 더욱 열심히 일하게 돼있다. 교육심리학자들이 얘기하는 '피그마리온 효과'가 바로 그것이다. '성적이 오를 것'이라는 칭찬을 받은 초등학생 집단의 IQ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