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벤처를 죽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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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를 죽여야 벤처가 삽니다."
벤처기업협회 장흥순 회장이 최근 사석에서 한 말이다.
장 회장은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에서도 벤처 육성책의 일환으로 '벤처를 죽여야 한다'고 제의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1천4백여 벤처기업을 회원으로 둔 벤처기업협회 수장의 말이기에 참석자들이 깜짝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노 대통령도 "무슨 말씀인지…" 하며 반문했다고 한다.
장 회장의 주장은 국내벤처산업은 이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단계로 도약해야 하며,이를 위해서는 '벤처죽이기'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사회자원의 효율화가 시급하다는 얘기다.
벤처기업인들은 이같은 벤처기업의 선택과 집중의 방법중 하나로 기업인수합병(M&A)을 제시한다.
M&A는 우량기업을 더욱 우량화하고 때로는 죽은(부실) 기업도 되살려 놓을 수 있다.
상장·퇴출기업간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미국 나스닥시장도 퇴출사유의 80%이상이 M&A다.
그러나 벤처기업인들은 "국내에서는 벤처기업간 M&A를 통한 상생(相生)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기업인수합병이 장려되고 있다지만 제한요소가 많아 중도에 무산되기 일쑤라고 덧붙였다.
교육솔루션개발업체인 A사는 지난해 업종이 유사하고 연구개발 인력이 풍부한 장외기업 B사를 인수합병하려다 막판에 포기해야 했다.
코스닥상장(등록)기업인 A사의 인수합병 대상이 되려면 B사도 사실상 등록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증권거래법 규정때문이다.
"등록요건을 갖췄다면 매물로 나왔겠느냐.제한규정 하나를 해결하면 또 한개가 불거져 규정집만 붙들고 씨름하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A사 대표)
M&A가 어떤 기업에는 성장엔진이,또 다른 벤처기업들에는 생존수단이 되고 있는데도 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는 설명이다.
부실벤처는 죽어야 하지만 이들이 갖고 있는 기술까지 사장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벤처기업의 M&A 활성화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손성태 산업부 벤처중기팀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