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택식물원의 이택주 원장(63).


젊었을 때 토목업으로 돈을 번 그는 근사한 목장을 꿈꾸었다.


남진의 노랫말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폼나게 살 요량이었다.


1977년 용인 땅에 한우 1백50마리를 사 풀어 놓았다.


2년반 만에 쫄딱 망해버렸다.


소값이 폭락하면서 사료값도 건지지 못했다.


목장 땅마저 처분하려 했는데 선친의 만류에 부딪쳤다.


그렇게 내버려둔 목장 땅은 비만 오면 사태가 일어나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무도 등을 돌린 듯싶었다.


심기만 하면 죽어버렸다.


나무를 안다는 사람들의 도움도 소용없었다.



오기가 났다.


식물로 승부를 내보자고 마음을 다졌다.


식물원다운 식물원 하나 없는 '식물 미개국'이라는 현실도 그의 결심에 불을 지폈다.


먼저 토종 자생식물에 마음이 갔다.


방방곡곡 돌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 무인도까지 찾아 들어가 종자를 따다 심고 가꾸었다.


그렇게 20여년.


농장은 근사한 식물원으로 바뀌었다.


자생식물 2천2백종, 도입식물 3천8백종 등 6천여종의 식물이 20여만평의 너른 땅에 뿌리를 내렸다.


두 해 전 환경부로부터 '자생지 외 희귀식물보존지구'로 지정받기도 했다.


'한택조개나물' 등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국내 최대 식물 유전자원 보고로 자리잡았다.


이 원장이 땀으로 일군 용인의 한택식물원이 지난 1일부터 사람들을 맞아들이기 시작했다.


동원과 서원중 동원의 빗장을 풀었다.


식물을 보고, 서로 얘기하며 또 배우는 품격 있는 '식물원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매표소가 있는 가든센터를 지나 식물원 안으로 들어서면 자생 붓꽃과 꽃창포를 볼 수 있는 아이리스원을 만난다.


이어지는 것은 원추리원.


자생 원추리 6종을 포함, 원예적으로 가치있는 1백20여 품종의 원추리가 모여 있다.


그 너머는 자연생태원.


작지만 예쁜 계곡 오른편에 1천여종의 자생식물이 각각의 생태환경에 맞게 심어져 있다.


"뿌리 쪽이 시원해야 잘 자라는 섬말나리 밑에 섬노루귀, 노루귀, 곰취 등을 심었어요. 잎이 넓게 펴지며 땅을 가려주는 키 작은 식물들입니다. 이들은 또 키 큰 섬말나리가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잘 자라게 되지요. 반그늘지대에 깽깽이풀이 보이죠? 전문가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서로 다른 식물의 서식환경을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강정화 식물원 관리팀장)


계곡을 지나면 전망대.


구조물을 두지 않은 이 전망대에 오르면 식물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 아래 쪽은 월가든.


우리 전통의 돌쌓기 방식으로 꾸며놓은 이곳에는 돌 틈에서 자라는 식물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양지 쪽에 사는 다년생 식물이 있는 숙근초원 옆 비비추원에서는 자생 비비추 7종을 포함, 1백20여 품종의 비비추를 볼 수 있다.


백목련, 자목련 등 30종의 목련터널 길이 식물원 나들이의 격조를 한껏 높여준다.


유리온실에는 소설 어린왕자에도 나오는 호주의 바오밥나무, 코알라의 주식인 유칼립투스 등 호주, 뉴질랜드 식물을 들여 놓았다.


1백20m 길이의 잔디화단은 잔디가 주인공.


강정화 팀장은 "잔디 상태를 봐가며 맨발로 걷게 할 계획"이라며 양쪽 화단이 아니라 잔디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한다.


이 원장의 소망은 한 가지.


한국이 식물 유전자원 강국으로 크는 것이다.


"백합의 자생지는 한국과 중국 일본 일부 지역이지요. 그런데 세계 꽃시장에는 2만여 품종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신품종을 만들어 돈을 벌고 있는 거죠. 원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것이지만 품종 개량을 하지 못해 돈을 주고 사들여야 하는 형편이 안타깝습니다. 올해는 식물연구소를 만들어 식물 유전자원 강국을 향한 확실한 걸음을 내디딜 계획입니다."



용인=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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