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사스' 박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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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1985년 미군에 갓 입대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보균 여부를 조사한 적이 있다.
당시는 에이즈나 HIV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때였으나 60만명의 혈액 샘플을 분석한 결과 적지 않은 군인들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었다.
그 때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밀리기 시작했으며 몇십년 후에는 바이러스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에이즈에 이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미생물이라도 이번에는 진압 가능성이 훨씬 높고 심지어 영원히 근절해 버리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근거는 세가지다.
HIV에 감염된 사람은 오랫동안 드러나는 증상이 없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병을 옮길 수 있지만 사스는 바로 발병하기 때문에 눈에 잘 띄고,그만큼 신속한 조치가 가능하다.
둘째,이번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앞장서고 전세계 의학 및 과학계도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환자 및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의 이동 경로가 전세계적으로 추적됐고,과학자들은 원인균이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유전자도 해독해냈다.
덕분에 누가 사스 환자인지를 가려내고 이중 누가 강한 전염성을 가졌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사스의 경우 계절을 탄다는 점도 우리에게 유리한 사실이다.
독감 홍역 천연두와 같이 기침과 재채기를 통해 병을 퍼뜨리는 바이러스는 모두 계절성이 강하다.
겨울에 창궐하다가 여름이면 잠잠해진다.
기온과 습도가 사스 발발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에는 실내에 모여 있는 시간이 많아 발병률을 높이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사스 외에는 별다른 유행성 독감이 발견되지 않아 사스 환자를 집중 관리할수 있다.
사스와 유행성 독감이 동시에 번졌다면 진단이 어렵고 처방이 지체돼 전염률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도 이번 처럼 운이 좋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1918년 악명 높았던 유행성 독감은 봄에 잠깐 반짝했다가 여름에 사라지더니 가을과 겨울에 다시 퍼지기 시작,결국 전세계를 황폐화시켰다.
이번에 세계에 씨를 뿌려둔 사스도 여름에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다가 겨울에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
올 여름은 사스를 퇴치할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전염병은 발병률이 가장 낮을 때 모든 환자를 격리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방 및 치료를 몇 배로 강화해야 한다.
진단 시약을 대량 생산하고,최빈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발병 사례가 없는지도 샅샅이 조사해야 한다.
과학기술 신봉자들은 백신과 치료약이 곧 개발될 것이기 때문에 박멸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할 지 모르지만 에이즈·에볼라·웨스트나일처럼 적어도 몇 년 동안 치료나 예방책을 찾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건성으로 유행병을 잡으려 한다면,이는 실패를 자초하게 된다.
WHO와 세계 각국 정부가 협력해야 목표 달성이 가능해진다.
미생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루이 파스퇴르는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뿐이다.
정리=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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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 메릴랜드주 존스 홉킨스 블룸버그 보건학교에서 '보건과 전염병'을 강의하는 도널드 버크 교수가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The last chance to eradicate SARS'라는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