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20년간 이어져온 홍콩의 고정환율제(페그제) 기반을 흔들고 있다. 사스피해를 줄이기 위해 홍콩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5%를 넘고 있는 재정적자가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소비급감 수출감소등으로 홍콩달러의 평가절하 압력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24일 "사스로 인한 경기침체 및 재정적자 확대로 홍콩의 페그제가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달러 절하압력 가중=홍콩은 1983년 이후 미달러당 7.80홍콩달러의 고정환율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페그제를 도입한 것은 홍콩경제가 중국정책에 과민반응을 보이면서 통화가치와 주가가 심하게 출렁거렸기 때문이다. 미달러에 자국의 통화가치를 연동시켜 금융시장의 요동을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셈이다. 지난 97년 아시아에 금융위기가 발생,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했으나 홍콩정부는 대미달러 환율을 그대로 고정시킨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스가 홍콩경제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변동환율제 도입,대미달러 페그비율 변경 등 어떤 방식으로든 홍콩달러를 평가절하 해야한다는 지적이 강해지고 있다. 소비감소,교역위축,디플레심화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홍콩달러 가치가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이날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홍콩달러에 대한 평가절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피치,홍콩신용전망 하향조정=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이날 홍콩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사스 확산으로 홍콩경제에 충격이 우려된다"는 게 이유다. 급증하는 재정적자도 향후 홍콩경제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사스가 홍콩의 재정적자를 더 심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재정적자가 사상 최대인 7백억홍콩달러에 달한 상태에서 정부가 사스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출을 확대할 경우 적자 규모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다는 것이다. ING은행의 이코노미스트 팀 콘돈은 "사스충격을 줄이기 위한 홍콩정부의 경기부양책(1백18억홍콩달러 규모)이 경기침체와 맞물리면서 내년 재정적자가 1천억홍콩달러로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홍콩증시의 항셍지수는 신용전망 하향,사스파문 확산 등이 겹치면서 1.22% 하락한 8,415.48로 마감,5년만의 최저치로 추락했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