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은 전쟁보다 훨씬 무섭다. 1348년 교황청이 있던 아비뇽에서 발생,1388년까지 계속된 페스트는 처음 5년동안에만 유럽인구 3분의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518년∼31년 아메리카대륙에 퍼진 두창과 연이어 닥친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티푸스는 중남미 원주민 90%를 몰살시키면서 찬란하던 잉카와 아즈텍 문명을 황폐화시켰다. 1918∼19년 유럽에 번진 스페인독감 또한 2천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40년대 들어 페니실린과 스트렙토마이신 등 항생제가 생산되면서 곧 퇴치될 듯했던 감염병은 그러나 끊임없이 생기는 새로운 질병으로 정복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또한 스페인독감처럼 심하진 않았지만 57년과 75년에도 유행,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인해 전세계에 비상이 걸렸다. 괴질로 알려졌던 것과 달리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변종인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고 위험성이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21세기 첫 팬데믹(세계적 유행병)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결국 중국 당국이 베이징 일대 위험지역에 대해 격리통제법을 발동하고 베이징 소재 초ㆍ중ㆍ고교와 대학도 24일부터 2주간 휴교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WHO를 중심으로 각국이 퇴치방안을 논의한다지만 이대로 가면 아시아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소리가 높다. 국내의 경우 아직 발생자가 없다지만 중국 유학생 귀국이 늘면서 사스 의심신고가 늘어나고 있는데 귀국자수 집계도 제대로 안되는 등 대응이 영 미흡하다고 한다. 관련인력이 턱없이 모자란 탓도 있지만 검역과 예방의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중국과 가깝고 교류가 잦은데다 인구밀집 지역이 많아 일단 생기면 급속히 퍼질 가능성이 있다. 너무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라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위험지역 입국자들을 체계적으로 추적 관리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거니와 차제에 방역체제를 재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