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길에서 만난 뭉클한 사연들 .. '겨자씨 자라 큰나무 되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이거 아무래도 암 같은데" "설마…?" 병원 문을 나서는 나는 이미 반 죽은 몸이었다.
수술 당일 의사는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내에게 아이들을 부탁했다.
문제는 늙은 홀어머니였다.
"어머니 제가 죽게 되면 양로원으로 가세요" "내 걱정은 말어.니가 시키는 대로 할께" 어머니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여섯시간의 수술 끝에 나는 다시 살아났다.
그날 이후 나의 삶은 하루하루가 축제다.
자연은 무한히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는 갤러리다.
대도 조세형과 탈옥수 신창원을 변론했던 엄상익 변호사의 에세이집 '겨자씨 자라 큰 나무 되매'(좋은책만들기,8천원) 첫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래서 더욱 세상을 사랑하고 마음을 맑게 헹구며 산다는 얘기.
여덟번째만에 고시에 합격한 늦깎이 변호사로서 그는 화려한 길을 두고 외딴 길을 에둘러 왔다.
그 길섶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10여년 전 법률사무소를 처음 열고 돈에 쪼들릴 때 뭉칫돈으로 유혹해온 졸부의 이면,밀수죄로 대신 옥살이를 할 뻔했던 부하직원의 아픔 등이 책갈피 사이에서 꿈틀거린다.
남동생의 석방을 탄원하러 온 여자 경리사원이 20년째 한두푼씩 적선한 돈이 1억원도 넘는다는 걸 발견하고 감동했지만 끝내 주저앉아야 했던 사연,파렴치한 죄목의 유명인이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는 것을 보고도 원망 대신 동생에 대한 사랑을 추스르던 사연도 눈물겹다.
겨울 산사의 연탄구멍 앞에서 쩔쩔매던 아들로부터 쇠주걱을 빼앗아 들고 방 청소까지 해준 뒤 논밭길을 총총히 걸어 되돌아간 아버지,산꼭대기보다 골짜기에 집을 지으라는 교훈,거지 성자 페터의 삶,참다운 믿음을 실천하는 과정 등이 가슴 뭉클하게 펼쳐진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