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칠레 양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위해 3년여에 걸친 협상을 벌인 끝에 지난 2월15일 협정문에 정식 서명했다. 이제 국회 비준 절차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다. 칠레가 농업에 비교우위가 있는 만큼 협상과정에서 농산물 개방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농업인들의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고 협상단도 이 분야에 협상력을 집중했다. 그 결과 쌀 사과 배는 자유무역협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포도의 경우 집중적으로 출하되는 5월에서 10월까지는 현행대로 관세를 매기고 11월에서 4월까지는 점진적으로 관세를 인하하는 '계절관세'를 도입했다. 또 고추 마늘 양파 등 3백77개에 달하는 중요 품목은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 이후에 논의키로 했다. 전문가들은 당초 우려했던 것보단 협상이 잘 타결돼 한·칠레 FTA가 발효돼도 단기적으로는 농업에 큰 피해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5∼16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관세가 인하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론 피해가 누적될 것으로 우려된다. 한·칠레 FTA협상 진행과정을 돌이켜보면 협상이 처음 시작된 1998년에는 두 가지 극단적 입장이 충돌했다. 한 쪽에서는 "자유무역협정은 세계적 추세이기 때문에 이를 감내해야한다"고 주장한 반면 다른 한 쪽은 "농업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히는 자유무역협정은 안된다"고 맞섰다. 3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은 과거보다 균형잡힌 입장에서 양측을 아우르는 해법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인 한국이 성장 엔진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서는 FTA를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농업과 농촌의 장래를 위해 필요한 투자도 할 수 있다. 정부는 현재 'FTA 이행특별법'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특별기금 설치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사안에 대해선 정부의 입장이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다. 문제는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필요한 재원을 일반 예산에 편성할 것인지,정부재정에서 출연하는 별도 기금을 만들어 지원할 것인지 부처간 입장이 조금 다르다. 농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농업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해법'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