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지난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어느 원로정치인이 한 정치신인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이제 정계를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난 별로 잘못한 일이 없는데."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을 나이든 정치인의 탓으로 돌리는 일은 드물지 않다. 나이는 곧 '낡은 것'이라는 인식이고,다른 일반 직종에 비해 유독 고령의 정치인이 많아서인지 정치정년은 항상 큰 이슈로 떠오르곤 한다. 내년 총선을 채 일년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나이' 얘기가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4·24 재·보선의 결과는 세대교체를 원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새 시대는 새로운 정치인을 원한다. 종전과는 다른 유형의 정치인이 나와야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젊은 사람일수록 창의력과 순발력이 뛰어나 일반 회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는 추진력과 효율성만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국민의 아픔을 보듬어 달래고,보·혁 갈등과 지방색 등의 사분오열된 여론을 추슬러 화합으로 이끄는 애정 어린 정치인이 더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인의 퇴출 기준을 나이로만 재단하려 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하는 '정치가'와 자신의 영달만을 쫓는 '정치업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가리는 노력 없이 포퓰리즘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성숙한 사회에서는 지양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인의 퇴출을 논의하는 시각 교정이 아쉽다. 훌륭한 정치인은 시대가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국민들이 키워야 한다. 스스로가 훌륭한 자질을 갖춰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국민의 채찍이 더 큰 지도자를 만들어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여기에는 시간과 경륜이 필요하다. 굳이 연령을 따진다면 자연적인 연령을 언급하기 전에 정신적인 연령도 한번쯤 고려해 봄직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