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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29일자) 집단이기주의 누가 부추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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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스 전담병원 지정이 주민 반대로 무산된데 이어 핵폐기장 건설,대구지하철 참사 분향소 설치 등 지역 현안을 둘러싼 집단민원이 폭력사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흔히 님비(NIMBY)로 불리는 지역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린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나 폭력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이제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울진에서 있은 원자력발전소 사장의 숙소에 무단침입해 협박한 사건이나 대구지하철 참사 분향소를 옮겨 달라며 대구부시장을 9시간이나 불법감금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명백한 인권유린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처럼 집단민원을 둘러싼 폭력현상이 수그러들기는 커녕 점점 더 극성을 부리는데는 물론 관계당국에 대한 불신과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에 근본적 책임이 있다. 사스의 감염경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졸속으로 전담병원을 지정해 주민들이 반발하자 철회한 것도 그렇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도 10년이 넘게 주민들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핵폐기장 문제도 마찬가지다. 주민들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빌미를 관계당국이 제공하고,물리력에 밀려 의사결정을 번복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이라 하겠다. 사스 전담 병원,핵폐기장은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시설이다. 한결같이 우리 지역은 싫다면서 남의 지역으로 가라고 하면 도대체 어디에다 이런 시설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정당한 보상과 절차에 따라 이뤄진 입지선정이라면 대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궁극적으로 국가안녕 질서가 유지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관계당국은 집단민원을 야기할 수 있는 입지선정에 대해서는 사전에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최대한 기울이되 한번 내린 결정은 끝까지 밀고가는 원칙을 지금부터라도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절차상의 하자는 없애되 집단행동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집단민원 제기과정에서 법질서를 유린하는 폭력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적용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정치권도 반성해야 한다. 집단민원이 발생할 때마다 이들을 설득하기는 커녕 현장에 달려가 정치생명을 걸고 사업을 철회시키겠다며 인기발언을 쏟아내서는 안된다. 일부이긴 하나 이런 정치인이 있는 한 지역이기주의는 더욱 극성을 부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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