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소비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내수형 경기불황 우려가 높아진 가운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쇼크'까지 가세해 국내 경제가 더한층 험난한 시련에 빠졌다. 사스 추정환자가 발생함에 따라 가뜩이나 부진의 늪에 빠져있던 유통업계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지난 2∼3년간 국내 경기를 지탱해온 민간 소비가 더욱 움츠러들고 경기전반이 구조적인 불황단계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경상수지 적자폭이 커지고 있고 교역조건마저 악화되고 있어 당분간 체감경기는 더한층 얼어붙을 공산이 커졌다. ◆ 위축되는 민간소비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4분기중 도소매 판매는 99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0.2%)했다. 도매는 1%, 소매는 0.5% 각각 감소했다. 경기를 가장 잘 반영한다는 백화점 매출은 1.4분기중 2.5% 줄었다. 내수용 소비재 출하도 1.7% 감소했다. 이에 따라 기업 창고에 쌓인 재고는 11.4%나 늘어났다. 국내 경기의 침체 이외에 소비 부진의 요인으로 꼽혔던 미.이라크전쟁의 불확실성은 걷혀졌지만 사스 쇼크가 돌출함에 따라 향후 경기를 가늠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백화점 할인점 등 유통업계는 '가정의 달'로 연중 최대의 대목을 기대했던 '5월 특수(特需)'가 사스 직격탄을 맞게 돼 초비상 상태다. ◆ 당분간 회복 어려울 듯 박재하 금융연구원 거시경제팀장은 "정부의 신용카드 정책이 바뀌면서 소득 범위를 벗어나 돈을 써왔던 계층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게 됐다"며 소비심리가 조만간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진단했다. 특별소비세를 없애거나 세율을 인하하는 등 그동안의 소비촉진 정책도 지금의 반사적인 소비위축에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2001년 말 특소세 인하조치 이후 자동차 가전제품을 중심으로 2002년 1.4분기 내구재 소비가 31.1%나 증가한 것이 지금의 상대적인 위축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강호인 재정경제부 경제분석과장은 "자동차나 가전제품은 한번 사고나면 일정기간 동안 소비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 속성이 있다"며 "내구재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당분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국제수지 감소로 소비여력 둔화 3월중 경상수지가 11억9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직접적인 원인은 유가 급등이었다. 지난해 말 배럴당 평균 26.4달러(두바이유 기준)였던 국제 유가는 지난달에는 32달러대로 치솟아 석유수입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2.8% 늘어났다. 수출은 전월 대비 16.3% 증가했으나 늘어나는 수입액을 쫓기엔 역부족이었다. 반도체 등 주요 수출품목의 단가가 개선되지 않아 교역조건도 악화된 것으로 추정됐다.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면 원화 가치가 떨어져 달러로 환산한 국민소득은 줄어들고 그만큼 소비여력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스 추정환자 발생으로 인해 미국 유럽 등 한국의 주요 교역국들이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수입을 꺼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걱정스런 대목이다. ◆ 소득.고용도 불안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센터장은 "소비자들이 향후 소득과 고용에 대한 확신이 없어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허 센터장은 "자산거품이 붕괴된 일본과 같은 소비불황이 국내에서 시작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올해 안에 소비가 회복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신규 고용을 늘리지 않는 한 소비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며 오히려 그동안 내수시장이 떠받쳐왔던 고용시장 역시 악화될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