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바닐라 열풍'이 불고 있다. 향수 치약은 물론 음료수에서 술에 이르기까지 온통 바닐라 향과 맛이다. 올 들어 4월 중순까지 새로 만들어진 '바닐라' 상품은 5백65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이상 늘었다.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10억달러를 돌파한 바닐라 관련 상품매출은 올해 이보다 두배 가까이 급증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왜 '바닐라'일까. 테러 전쟁 주가폭락 등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시대에 사는 미국인들이 의식주 생활에서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마케팅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색이나 향이 튀지 않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바닐라는 그 점에서 제격이란 것이다. 신상품을 분석하는 글로벌데이터베이스의 린 돈블래서 편집장은 "식품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바닐라 바람이 이제는 업종 구분없이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펩시콜라가 오는 8월부터 '펩시 바닐라'를 출시키로 한 것도 이런 분위기의 반영이다. 코카콜라는 이미 '빅 바닐라 코크'를 앞세워 바닐라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음료잡지인 비버리지 다이제스트의 존 시커 편집장은 "바닐라가 앞으로 몇 년간 음료산업 성장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커피와 술도 마찬가지다. 커피메이커인 맥스웰하우스와 P&G는 최근 바닐라를 기본 커피메뉴에 포함시켰다. '바닐라 보드카'의 지난해 매출 증가율은 1백77%. 전체 보드카시장 증가율이 2.8%였던 점을 감안하면 놀랄 만한 성장이다. 럼주메이커인 비카르디도 최근 '비카르디 바닐라'를 만들어 팔고 있다. 방향제는 이미 바닐라가 석권했다. 가정용품을 파는 '배스&보디'의 미국내 1천6백개 매장에서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 '바닐라 슈가'라는 방향제였다. 입술의 건조를 막아주는 '립 밤'(lip balm)은 물론 치약도 바닐라 향을 첨가한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