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바이러스, 이번엔 사스로..朴星來 <한국외대 교수·과학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구(金九:1876∼1949)의 자서전 '백범일지'에 이런 기록이 있다.
"나는 서너살 때 천연두를 앓았는데,어머님께서 보통종기를 치료할 때와 같이 대나무침으로 따고 고름을 짜내서 내 얼굴에 마마자국이 많다."
그의 얼굴이 많이 얽었음은 사진을 보면 당장 알 수 있을 정도다.
지금 세계를 위협하는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란 전염병은 바로 김구의 얼굴에 자국을 남겨준 천연두와 사촌쯤 되는 질병이다.
천연두를 비롯한 바이러스성 전염병은 과학사를 공부하는 나에게 두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한 사람은 1세기 전의 우두 보급자 지석영(池錫永:1855∼1935)이며,다른 한 사람은 지금 한국학술원 회장으로 있는 이호왕 박사다.
지석영은 1879년 12월 이 땅에 처음으로 우두를 실시했고,이어 이를 전국에 보급했다.
그의 활동은 계속돼 '우두신설(牛痘新說)'같은 책을 쓰기도 하고,1894년엔 종두의(種痘醫) 양성소를 만들어 전문 우두 기술자를 길러냈다.
전국에 우두국을 설립해 우두를 시행했다.
김구의 천연두 앓이는 그의 나이 서너살 때라니까 1879∼1880년이 된다.
바로 지석영이 우두를 처음 실시할 무렵이다.
'우두'란 천연두 또는 마마라는 무서운 전염병을 예방하는 접종인데,1796년 영국의 젠너가 발명했다.
그것이 1세기 뒤 우리나라에 도입돼 수많은 목숨을 구하며,'곰보'가 사라지게 했다.
대유행을 되풀이,몇십만명씩의 사망자를 내고 또 많은 생존자들의 얼굴을 얽게 만든 악명 높은 전염병의 하나가 천연두였다.
하지만 1967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천연두 박멸운동 결과로 1977년 이후 2년간 환자 발생이 없었고,WHO는 천연두 근절을 발표했다.
그 후 한국도 천연두 예방접종을 권장하지 않았으며,1993년 천연두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우두를 발명한 젠너도,1세기 뒤 조선의 지석영도,천연두의 원인이 바이러스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바이러스라는 존재가 과학자들에게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898년이다.
그 후 의학자들은 천연두 말고도 뇌염 유행성출혈열 간염 광견병 독감(인플루엔자) 홍역 풍진 등등 바이러스 질환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고,일부에 대해서는 예방 백신을 개발해냈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이호왕 박사의 공이 드러난다.
그는 1976년 세계 최초로 등줄쥐에서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이어 그 백신을 개발해 냈다.
지난 1월초 나온 그의 자서전 '바이러스와 반세기'에서 그는 자신의 일생이 일본뇌염 및 유행성출혈열과의 싸움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바이러스란 크기가 세균보다 훨씬 작은 미생물로 보통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으며,10만배 이상 확대되는 전자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다.
또한 세균은 아무데서나 잘 증식하는 반면,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세포 안에서만 기생하며,스스로는 번식하지 못해 숙주세포가 복사해 주는 까다로운 원시적인 생물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세균성 질병은 항생제로 치료하는 길이 제법 열렸지만,바이러스성 질환에는 아직 특효약이 없다.
백신의 개발로 천연두를 없앤 듯하고,유행성출혈열도 퇴치할 수 있게 됐으며,소아마비도 무섭지 않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너무나 많은 바이러스성 질환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판에 새로운 형태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사스가 번지고 있다.
중국 광둥에서 지난해 11월 시작된 이 전염병을 중국인들은 그것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모양의 폐렴이란 뜻에서 '비전형폐렴(非典型肺炎)',약칭 '비전(非典)'으로 부른다.
일본은 이를 신형(新型)폐렴이라 부른다.
WHO 의학자들에 의하면 이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질환을 일으킨 일이 없는 새 종류일 것으로 보는 듯하다.
그리고 임상실험용 백신은 몇달 안에 개발되겠지만,이를 실용화하려면 몇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한다.
바이러스 입장에서 볼 때,정말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바이러스도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하며 인간을 괴롭히는 듯하다.
사스가 가면 다음에는 또 어떤 신종 바이러스가 인간을 위협할까?
아직 그걸 예측할 수 있는 과학은 없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