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2일 마련한 경제 5단체와의 비공개 간담회에선 재계가 새 정부 출범 이후 겪고 있는 어려움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이날 조찬모임을 마련한 김효석 민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도 "재계가 집단소송제 도입이나 출자총액제한제 등 정부의 재벌정책에 반대하는 데는 틀림없이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것"이라며 "재계가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얘기해 달라"고 발언을 유도했다.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경제 5단체 부회장들은 주로 분식회계 처벌과 출자총액규제 등 재벌개혁 과제에 대한 기업의 어려움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호소했다. 현안으로 떠오른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대비한 기금조성과 외국인 고용허가제 등에 대해서도 재계의 불만을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했다. 한 참석자는 "집권당이 재벌개혁을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재계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해 연착륙시키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오전 7시30분부터 9시까지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조찬모임에서 대화는 집단소송법상 분식회계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서부터 출발했다. ◆ 분식회계 관련 △ 김효석 의원 =정부는 기업들의 과거 분식회계는 문제 삼지 않고 앞으로 벌어질 분식회계만 문제 삼으려고 한다. 좋은 대안이 있으면 말해 달라. 한나라당도 집단소송법상 소송대상에서 분식회계 부분은 1∼2년 유예하고 허위공시와 주가조작만 포함하기로 했다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 =과거에 발생한 분식회계 부문만을 덮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과거 누적분을 회계장부에 계속 떠안을 수밖에 없다. 1∼2년 안에 과거 분식회계 부분을 한꺼번에 털어내라는 얘기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무리다. 과거 분식회계는 기업들이 정치자금을 내느라 어쩔 수 없이 한 측면도 있었다. 불법 정치자금을 내고 회계장부상에 다른 정상거래로 처리하다보니 분식회계를 했다. 종합상사는 대기업의 돈 줄 역할을 했기 때문에 분식회계 규모가 컸을 수도 있다. 또 기업 스스로 주가관리나 상장요건을 맞추기 위해 분식회계를 했다. △ 김효성 대한상의 부회장 =맞는 말이다. 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지 않고는 한꺼번에 분식을 털기는 힘든 일이다. ◆ 출자총액규제 관련 △ 김 의원 =재계에서 출자총액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데 민주당은 현행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유지한다는 확고한 방침을 갖고 있다. △현 부회장 = SK사태에서 보듯이 현행 제도는 적대적인 기업인수합병(M&A)의 빌미가 될 수 있다. 국내기업엔 역차별 규제다. △ 김 의원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총액규제에서 벗어나는 삼성을 다시 규제하려고 하는데 삼성 같은 대기업은 출자규제를 하나 안하나 큰 영향을 받지 않아 실효 없는 규제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공정위 방침에 반대한다. ◆ 한.칠레 FTA 관련 △ 김 의원 =한.칠레 FTA는 국회 비준이 어려운 상황이다. 농민들을 달래기 위해 기금을 조성하려고 하는데 무역협정 발효로 수혜를 입는 업종이 기금을 부담하면 어떻겠는가. △ 김 상의 부회장 =중국과 마늘 파동을 일으킬 때 중국에 휴대폰을 수출하는 업계가 국내 마늘재배 농민을 위해 돈을 냈는데 이는 아주 나쁜 선례다. 기금으로 보조금을 주면 세계무역기구(WTO)의 국가보조금 금지 규정에도 어긋난다. ◆ 중소기업의 외국인 고용허가제 △ 김 의원 =민주당은 사정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엔 현행 산업연수생제를 유지하고 경영 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사업장엔 고용허가제를 병행 실시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 장지종 중기협 부회장 =요즘 중소기업들이 불경기 속에서 자금경색으로 애를 먹고 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에도 신중을 기했으면 한다. ◆ 수출현황 △ 김 의원 =지난달엔 수출이 좋았는데 사스(SARS)로 우리나라가 반사이익을 보지 않나. △ 이석영 무협 부회장 =반사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주요 수출대상국인 미국에선 중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아시아국가로 보기 때문이다. ◆ 노동분야 △ 김영배 경총 전무 =정부가 노동자의 기대심리를 너무 높이면 중소기업만 죽어난다. 공고를 졸업해 연봉 1억원을 받는 대기업 노조원이 있다. 연봉 5천만, 6천만원은 기본이다. 대기업 노조는 너무 귀족화돼 있다. 대통령도 지난 1일 토론회에서 대기업 노조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정구학.김병일.장경영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