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는 외국어 남발 정부인가. 클러스터,로드맵,정책 프로세스 개선,대통령 아젠다·프로젝트,태스크포스(TF),워크숍,코드 등.주요 정책과정에서 남발되는 외국어에 끝이 없다. 고위 당국자들 입에서 이런 용어들이 일상적으로 튀어나오고,공문서에도 여과없이 오르내린다. 지난 2일 청와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제3회 국정과제회의가 열렸다. 고건 총리를 비롯해 '대통령 아젠다'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인 13명의 장관(급)과 배순훈 추진위원장 등 14명의 민간위원이 앞에 앉았고 '국정과제 태스크포스' 팀장인 일부 비서관 등 26명은 뒷줄에 배석했다. 이날 회의에서 거론된 개념은 '핵심 클러스터'(산업 및 지원·연구 집적지역이나 단지). 사전 준비된 동북아 전략 주제발표가 '클러스터에 기초한 경제발전 전략:주요 부처별 현황 및 이슈'였다.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을 상대로 한 배 위원장과 실무 비서관의 설명 때도 이 용어는 계속 오르내렸다. 생소한 용어 때문에 동북아 전략은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비서실의 공식 직제에도 '정책 프로세스 개선 비서관''국정모니터 비서관''국정과제 태스크포스 비서관'이 있다. '워크숍' 정도는 흔한 말이 됐다. 노 대통령이 참석한 지난 3일의 '차관급 공직자 워크숍',이에 앞서 국정과제 워크숍(4월16일)과 장관 워크숍,비서관 워크숍 등.과거 정부에서는 '연찬회'란 용어가 많이 쓰였다. 최근 출범한 노동개혁 태스크포스,농어촌대책TF의 '태스크포스'도 전담반이나 기획단과 같은 용어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 8일 국무회의에 상정된 인사정책 개선안건은 '참여정부 인사시스템 개혁을 위한 로드맵'이었다. 이 정책을 담은 문서와 공식 발표되는 보도자료에는 온통 로드맵(원래는 이정표,일정표 계획이라는 의미로 씀)이란 말로 가득차 있다. 이 개념을 정리,도입한 곳이 바로 정책 프로세스 개선 비서관실이다. 이곳에는 대학 교수 출신인 전기정 비서관을 비롯 경영컨설팅 전문가가 행정관으로 일하는 곳이다. 며칠 뒤 정찬용 인사보좌관도 기자 설명에 나서 별도의 인사로드맵을 설명했다. 인사로드맵에는 '9대 인사개혁 아젠다'가 주요 내용으로 명시돼 있다. '아젠다(과제·안건)' 역시 대통령직 인수위 때부터 일상화된 말.'새 정부의 국정과제'라면 될 것을 '국정 아젠다''대통령 아젠다'라고 표현한다. 청와대 주변에서 친숙했던 이런 용어가 이제는 관가 전체로 퍼져나가는 양상이다.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관심을 끌어모으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코드' 논쟁도 마찬가지."철학이 같다"거나 "관점이 비슷하다"면 될 것을 "코드가 맞고,안맞고"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용어가 공식자리나 공식문건에 그대로 오르내린다는 점이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