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치고 과학기술이 강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최근에 뜨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기술 강국을 지향하고 있다. 그 주역은 바로 과학기술자와 이공계 출신 엔지니어들이다. 고급 과학두뇌와 기술인력 없이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과학기술 없이는 이제 살아남기조차 어렵게 됐다. 그 반대의 논리도 성립한다. 기술만 있으면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다. 새로운 '테크노 헤게모니(기술 패권주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은 과학기술 강국을 아젠다로 내건 '스트롱 코리아(STRONG KOREA)'의 제3부 '기술선진국에서 배운다'를 마무리하는 좌담회를 최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었다. 이날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국가 과학기술 혁신체제 구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좌담 내용을 간추린다. < 참석자 > 권문식 <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전무 > 김득갑 < 삼성경제硏 수석연구원 > 김병목 < 科技기획평가원 조사분석실장 > 류태수 <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 박병무 < 科技기획평가원 기획평가단 단장 > 최기련 < 고등기술연구원 원장 > 최영훈 <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 > 함성득 <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 홍유수 < 대외경제정책硏 석좌연구위원 > 안현실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사회 > ( 이름 가나다 順 ) ----------------------------------------------------------------- ▲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최근 각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혼돈상태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은 9.11테러 사태를 겪은 후 과학기술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유럽은 응용 분야에 이어 이제는 기초 분야에서도 미국에 뒤지고 있다고 판단,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80년대 중반의 통상마찰 이후 기초과학에 눈을 돌려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장기 불황의 그늘에 가려 있습니다. 중국은 과학기술 민수화 과정에서 대대적인 정책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홍유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석좌연구위원 =과학기술 정책의 접근 방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국가 전반의 혁신 시스템에 맞춰 과학기술 정책을 수립하는 추세입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재정 등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제도와 인프라 등 다양한 부문에서 정책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정책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고 권한을 가지는가 하는 과학기술 정책의 지배구조에도 변화의 기류가 보입니다. 선진국은 과학기술 전문가와 시민들의 참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 박병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기획평가단 단장 =과학기술 선진국은 자국 환경에 맞는 과학기술 정책 개발, 미래 신기술 개발, 체계적 예산 집행을 통한 국가차원 연구개발 지원 등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우리도 산업구조와 기술구조의 특성을 어떻게 연구해야 하고, 국가에서 어떻게 이를 지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과학기술 중심사회 건설을 위한 키워드 확립도 필요합니다. ▲ 최영훈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 =미국은 국가적인 위기 발생을 계기로 과학기술 도약을 이뤄내는 소위 '크라이시스 드리븐'(Crisis Driven) 정책 성향이 강합니다. 미국 정부의 연구비 지원은 90년대부터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기업이 주도하는 혁신 시스템을 지향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 함성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과학기술 정책을 지원해 줬습니다. 옛 소련이 스푸트닉호를 발사하자 케네디 대통령은 '뉴 프런티어' 정신과 달 탐사 계획을 제시하며 국민적인 과학기술 부흥 의식을 이끌어냈습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과학기술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모멘텀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봅니다. ▲ 권문식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전무 =독일은 실용 중심의 인재 육성과 산.학 연계 체계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도 적합한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 석.박사 학생들이 졸업 후 자동차 분야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시 1∼2년의 재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독일 학생들은 학교를 나와 바로 현장 실무에 투입될 수 있습니다. 산업을 제외한 과학기술은 의미가 없다는게 그들의 생각입니다. ▲ 최기련 고등기술연구원 원장 =우리나라 과학기술 체계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 제도 등 여러 측면에서 프랑스와 유사합니다. 프랑스는 90년대 말 과학기술 통계조사를 실시하고는 그동안 테크노크라트의 집단 이기주의만 키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문가들은 2차대전 후 대대적으로 기초과학을 지원하면서 내세웠던 '위대한 영광'이라는 슬로건도 지금은 '생존'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부 기업 연구소 등 과학기술 주체들의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상호 활동이 중요해졌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해외경제실 수석연구원 =북유럽 스위스 아일랜드 등은 나라 규모는 작지만 과학기술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연구개발(R&D)에 친숙한 환경을 갖고 있고 특히 산업 클러스터 중심의 과학기술 지원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 류태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일본의 과학기술 정책은 전반적으로 독일과 유사합니다. 2차대전 때 독일 기술자들을 대거 영입했으며 자국 내 경쟁을 통해 과학기술 혁신을 이뤄냈습니다. 장기 불황을 겪은 후에는 인력 확보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김병목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조사분석실장 =중국이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공산당이 중심에서 강력한 추진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추격'에서 '추월'로 방향성을 잡고 있을 정도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 안 위원 =기술 선진국의 사례에서 우리가 참고할게 있다면…. ▲ 박 단장 =국가연구개발 사업체계를 재정비해 핵심 분야에 집중 투자해야 합니다. 현재 국민이 낸 세금 5조원이 정부 출연 연구소, 기업, 대학 등 연구개발 부문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투자가 필요한 부문에 사용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 최 원장 =정부 출연 연구기관 중심의 연구개발 시스템이 전체 연구의 효율성을 낮추고 있습니다. 이공계 박사의 10% 이하가 분포돼 있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정부 R&D 예산의 절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합니다. ▲ 권 전무 =과학기술은 사람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공학교육은 사람을 망치는 교육입니다. 공대 교수중 산업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해외 저널에 실린 논문 수로 교수를 평가하는 관행도 개선돼야 합니다. ▲ 함 교수 =성공한 이공계 출신 정치인, 장관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도 여성장관으로 볼게 아니라 과학기술자 출신 장관으로 봐야 합니다. 과학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환경 행정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 김 수석연구원 =참여정부가 들어선 후 송도밸리를 비롯한 산업 클러스터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클러스터의 중심인 대학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클러스터 안에서 대학의 역할을 확립하는게 시급합니다. ▲ 김 실장 =최고경영자(CEO)가 과학기술에 대해 식견을 가져야 합니다. CEO가 기술을 이해하지 못해 연구개발을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R&D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대기업 연구소 중에서도 성공.실패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편법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 최 교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형섭 장관을 중용했던 것처럼 과학기술부 장관에 대통령의 측근을 임명해야 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할 과기부 장관이 너무 자주 바뀌고 있습니다. 미국처럼 과학자문관이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서 조언을 해야 합니다. 정리=송대섭.장원락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