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체의 제품 출하가 중단되면서 산업계가 '패닉(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철강업체는 원자재 조달마저 중단돼 공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고 수요업체들은 철강 재고가 바닥나 가동에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제조업 밀집지역인 포항 울산 마산지역의 고속도로가 마비되면서 전국 물류망이 위협받고 있고 수출입 업무마저 중단될 위기다. 산업계는 파업이 장기화되면 자칫 생산기반이 붕괴될 수도 있다며 정부에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 철강.조선 마산의 환영철강은 7일 오후부터 전기로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게 됐다. 50여대의 트레일러가 지난 2일부터 회사 정문을 가로막고 전기로 가동에 필요한 산소차량의 출입을 저지하고 있어서다. 철근 출하가 중단된 포항의 동국제강 공장은 원자재 반입도 중단돼 내주부터는 정상조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부산의 대한제강은 15%의 운송비를 추가로 지불하면서 간신히 화물을 실어내고 있다. 연합철강 YK스틸 등은 하역운송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운송업체와 관계사의 차량을 이용하고 있지만 파업지역이 확대될 경우 정상영업이 불가능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조선업체에서는 현대미포조선이 7일 조업중단이 불가피해진데 이어 한진중공업도 조업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포스코로부터 철판을 공급받는 한진중공업은 재고가 일주일치에 불과해 운송중단 사태가 길어질 경우 작업일정을 늦출 수 밖에 없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운송연대측이 화주인 철강업체를 볼모로 삼아 위력을 과시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 자동차.전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열흘치 정도의 자동차용 강판 재고를 확보하고 있지만 운송노조의 파업이 다음 주까지 진행될 경우 조업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특히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철강제품 품목이 1천여개에 달하는 만큼 일부 품목에서 품귀현상이 발생할 경우 전체 조업이 어려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INI스틸이나 BNG스틸을 통해 구매선을 다변화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한달치에 가까운 재고를 확보하고 있는 GM대우차 역시 파업 장기화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들어갔다. 전자업체들도 이번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원자재 수급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삼성전자 광주공장은 포스코에서 육상으로 운송받는 철강 원자재의 공급이 3주 이상 지연될 경우 당장 냉장고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된다. 수원공장은 해상운송을 통해 인천에서 자재를 공급받아 그나마 한숨을 돌리고 있다. 포항 인근의 1차 가공업체들로부터 가전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공급받는 LG전자 창원공장은 이들 업체의 재고량을 점검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다행히 이들 업체가 3주 가량의 재고분을 비축하고 있어 당장 조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지만 파업이 이달말까지 지속될 경우 정상가동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물류.해운 화물연대가 포항으로 통하는 길을 막고 있어 관련 물자 수송이 전면 통제되면서 물류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대한통운은 포항지역 매출의 70%를 포스코 관련 물자의 하역과 운송을 통해 올리고 있다. 하지만 파업의 여파로 월간 15만∼16만t에 달하는 포스코 육상운송 물량이 발이 묶였다. 다른 물류업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월간 12만t의 포스코 육상 물량을 수송하는 한진을 비롯한 동방 삼일 등 중견 물류업체들 역시 육상운송을 전혀 못하고 있다. 전국에 총 5백80여대의 트럭과 트레일러를 운행하고 있는 (주)한진의 경우 포항지역을 뛰는 67대의 차량이 '올스톱'된 상황이다. 회사 관계자는 "운전 기사들에게 정상 운행을 독려하고 있지만 운송 노조측이 현지에서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화물을 실어나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 역시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수출입 화물이 집결되는 부산지역까지는 아직 여파가 없지만 파업이 포항에서 경남지역 일대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선적이나 하역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인식(울산.포항).김태현(부산).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