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인사(人事)가 많은 문제를 제기해 왔는데, 국정원장 및 국정원 기조실장 임명은 그 절정이라는 느낌이다. 국내외 국정 현안이 예사스럽지 않은 때 대통령과 야당이 국민을 볼모로 진검승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왕조는 외형상 절대왕권국가였지만 특정집단이나 개인, 심지어 왕에게까지 권력이 집중되거나,국정운영의 잘못·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었다. 권력의 분산과,공론에 의한 언론자유와,개방에 대한 보장이 그것이었다. 이와 관련, 흔히 언론3사(言論三司)라고 불린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과,이 기관의 간부들을 통칭한 언관(言官)의 역할,그 중에서도 사간원(司諫院) 및 간관(諫官)의 역할과 기능이 특히 우리의 눈길을 다시 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이들의 직무는 임금의 언행이나 정치에 잘못이 있을 때 바로 잡기 위한 언론역할과,부당하거나 부적합한 인사에 대한 비판기능이었다. 임금의 잘못이나 문제점을 지적하고,시정을 요구하는 일이 그들의 주임무였다는 이야기다. 절대왕권국가에서 왕이 듣기 싫어하거나 거북해하는 이야기만 하는 것을 업(業)으로 하면서 봉록을 받는 제도를 만들어 놓은 것은 참으로 지혜롭다. 이 간관의 자리는 계급에 관계없이 학문이 뛰어나고 인품이 강직한 사람 가운데서 선발했다. 인사를 해도 지방으로 내보내지 않고,승진 때는 파직기간도 근무일수에 포함시키는 등 특별배려를 했다. 이들의 중요한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거나,이들의 말이 거슬린다고 해임하거나 좌천시키면 여지없이 '나쁜 임금',심하면 '폭군'으로 몰리게 마련이었다. 연산군과 광해군이 대표적인 사례다. 연산군은 사간원을 폐지까지 했다. 그러나 중종 때 바로 부활된 후 갑오경장 정부조직 전면개편 때까지 왕권을 스스로 제약하는 이 기관은 조선조 내내 유지됐다. 조선왕조가 그 많은 국내외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5백년 이상 유지된 것은 이런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참여정부에서 대통령과 다른 견해가 최소한 참고라도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주요 국정운영주체 간에 견해차로 인한 극한대치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국정구조 내에 없다는 사실은 진정 우려할 상황이라고 본다. 최근의 사태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은 최소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국회에 노 대통령과 정부를 뒷받침해 줄 충분한 지지세력이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고,이 제약의 범위 안에서 국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설사 대통령의 생각이 옳다고 하더라도,국회를 설득해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어떠한 입법이나 정책 추진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 범위 안에서만 대통령과 정부가 일을 하도록 국민들로부터 수권(受權) 받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일 것이다. 둘째,노 대통령과 정부는 선조들의 국정운영 지혜를 배워야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나,듣기 싫은 이야기를 최소한으로라도 듣지 않을 수 없는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만들고 운영할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언제까지 소위 '코드'가 맞는 사람들하고만 이야기하고,그들 간의 합의만 가지고 국정을 운영할 것인가? 이런 사고나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지 않으면,궁극적으로 국가에 도움이 될 비판이나 대안 제시를 해 줄 수 있는 국회 언론 시민단체 등 현대적 의미의 언론3사 기능이나 정부 내 이런 종류의 조직이나 사람의 기능은 점차 소멸돼 갈 것이다. 이런 사태가 초래할 결과는 자명하다. 참여정부는 '오늘의 간관(諫官)은 누구인가?'란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정부에 포용할 아량은 없더라도,또 이들의 이야기를 수용하지는 않더라도,일단 경청만이라도 의무화하는 제도적 장치, 즉 낮은 수준의 현대판 '사간원'을 정부에 설치하도록 제의해 본다. 부질없는 제안인 줄 알면서도 답답해서 하는 이야기다. ihkim@shinkim.com -------------------------------------------------------------- ◇칼럼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