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통령이 골프를 했다 해서 한바탕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대통령이 한가하게 골프나 할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넉넉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한시름 털고 갑니다'라는 소회를 남긴 대통령의 '시름'이 안쓰럽고 이를 흘겨보는 일부의 차가운 시선이 안타깝다. 내 친구 중에 정말 훌륭한 공무원이 있다. 그는 총명할뿐만 아니라 청렴하고 사명감도 투철해서 공무원의 사표로서 흠잡을 구석이 없어 친구들 사이에서도 존경받는다.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후로 휴가는 물론 주말을 온전히 쉬어본 적이 없으며 정시 퇴근은 언감생심,수시로 밤을 새우기 일쑤다. 그의 책상 옆에 틈틈이 눈을 붙이기 위해 놓아둔 허름한 안락의자가 보는 사람을 숙연하게 한다. 우리는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가끔 토론 아닌 토론을 벌이는데,그의 해박한 지식과 정연한 논리에 주눅들어 주로 듣는 편이다. 하지만 그의 애국심과 진리의 독점이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어쩌다 우리가 조심스럽게 이견이라도 제기할라치면 '너희들 중에 나만큼 열심히 일하고,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 있어?'하는 그의 한 마디에 모두 꼬리를 내리고 입을 다문다. 지혜는 지식이나 업무량에 비례하지 않는다. 개방적,다원적 민주사회에서 현실 인식이나 해법에는 불변의 '진리'가 있을 수 없다. 높은 위치에 오를수록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지도자들이 종종 실패하는 것은 그들의 교만과 아집에서 연유한다.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구소련의 레닌,독일의 히틀러,캄보디아의 폴포트는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나,휴식 없이 일에만 열심이었던 점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인물들이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웬만한 위기상황에서도 가족과 애견을 데리고 휴가를 떠난다. 그것도 여름,겨울 한달 가까이 씩이나. 그러나 대통령들이 너무 놀아서 미국이 잘못됐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대통령이 골프를 하는 것을 나쁘게 볼 필요가 있을까. 지도자를 억지로라도 쉬게해서 남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