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6월 현대상선의 대북송금은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외에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김재수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가신그룹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은 그룹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상선을 통한 대북송금 자금 마련에 처음부터 반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북송금 의혹사건'을 수사중인 송두환 특별검사팀은 김 전 사장을 9일 오전 소환,이같은 내용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999년부터 2001년 10월까지 현대상선 사장을 지냈던 김씨는 작년 9월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떠났다가 지난 7일 귀국해 특검팀의 조사를 받고 있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대북송금의 의사결정 과정 △청와대나 국가정보원의 개입 수준 △대출신청서에 서명하지 않은 이유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특검팀은 또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가 "2000년 9월 4천억원의 대출금 상환요청을 하자 김충식씨가 '우리(현대상선)가 사용한 돈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진위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이와함께 특검팀은 김충식씨에 이어 다음주부터 김윤규 현대 아산 사장,김재수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등 현대측 핵심 경영진에 대한 소환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김 전 사장의 진술=특검 조사에서 김씨는 지난 2000년 6월초 산업은행을 방문,4천억원의 운영자금 대출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그러나 처음부터 대출 신청을 반대했으며 그룹 수뇌부 회의에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비롯한 이른바 '가신 그룹'들이 강력하게 밀어붙여 어쩔 수 없이 대출을 신청했던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신그룹이 김 전 사장에게 "대북사업이 잘 돼야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도 살릴 수 있다"며 "모든 계열사들이 어려운 마당에 당신만 살려고 하느냐"고 몰아세웠다는 것. 김씨는 또 2천2백35억원의 대북송금용 산업은행 수표를 외환은행에서 환전하는 과정에서 국가정보원과 협의가 있었음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사장 왜 그만뒀나=지난 2001년 10월 김씨가 사표를 낸 것은 건설 아산 등 현대계열사들에 대한 지원을 놓고 그룹 핵심 관계자들과 잦은 마찰을 빚은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김씨는 현대상선이 지난 98년 11월부터 시작한 금강산 관광사업이 불과 2년만에 4천억원 이상 적자를 내고 현대아산에도 1천8백억원의 돈을 쏟아부으면서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대북송금에 반대의사를 표시했던 김씨는 그해 10월 현대상선이 갖고 있는 5천5백억원 상당의 현대전자 및 현대중공업 지분 매각을 놓고는 그룹측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2001년 4월 현대상선이 금강산 사업을 포기하기로 결정하자 김씨는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등과 또 다시 한바탕 설전을 벌였고 이어 현대증권 매각과정에서도 가격 문제를 놓고도 정 회장 측근들과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는 사표를 낼 당시 "현대상선이 치열한 국제 경쟁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독립경영'과 '투명경영'이 필수적이며 단돈 1원이라도 부실한 계열사에 줄 수 없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직원들은 기억하고 있다. 조일훈·이태명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