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가치의 초강세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초 0.80달러대까지 떨어져 이류 통화로 전락할 위기에 몰렸던 유로화는 지난주 한때 1.15달러를 넘어섰다. 현재 미국과 유럽간의 실질금리차,미국의 쌍둥이 적자,미 달러화의 고평가 정도를 감안할 때 유로화 강세국면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이 내년 대선을 겨냥해 경기부양과 무역적자 해소를 목적으로 달러화 약세를 유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요즘 들어 유로화가 빠르게 정착됨에 따라 그동안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영국 스웨덴 덴마크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유로랜드에 가입할 뜻을 비추고 있다. 이르면 올해안에 이들 3개국이 유로랜드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는 유럽연합(EU)의 회원국 확대를 규정한 니스 협약에 따라 동유럽과 지중해 연안 10개국이 EU에 가입하게 된다. 앞으로 유로랜드는 러시아 일부 지역과 북부 아프리카를 포함한 '범(汎)유럽경제권'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범유럽 경제권이 형성될 경우 21세기 국제통화 질서에는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권역별로 공동화폐 도입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공동화폐 도입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유럽 이외에 가장 빨리 진전을 보이고 있는 지역이 중남미다. 최근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공동화폐를 도입키로 합의했다. 더욱이 금융위기 과정에서 자국통화 가치가 불안정함에 따라 중남미 지역에서 미 달러화 사용이 보편화된 점을 감안하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간 공동화폐 도입 논의는 중남미 전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화가 정착되고 중남미에서 달러라이제이션이 확산됨에 따라 이에 자극받은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공동화폐 도입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이미 동아시아 지역내 공동화폐 도입 등의 연구과제를 수행할 싱크탱크가 마련됐고 공동화폐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뤄지는 단계다. 앞으로 동아시아 지역에 단일통화체제가 도입될 경우 유로화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 단일통화 도입의 전 단계로 아시아통화제도(AMS)에 의해 각국간 통화가치를 일정범위 내로 수렴시킨 뒤 아시아중앙은행(ACB)을 설립해 경제여건이 비슷한 국가부터 단일통화를 도입,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21세기 국제통화 질서는 유럽경제권의 유로화,미주경제권의 미 달러화,동아시아 경제권의 단일통화간의 3극 체제로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3대 광역경제권과 3극 통화체제하에서는 환율결정 메커니즘도 이들 3대 통화간의 환율 움직임에 상하 변동폭이 설정되는 '목표환율대(target zone)'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지역내 공동화폐 도입을 위한 각종 연구과제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공동화폐 도입에 앞서 전제가 돼야 할 원화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연구과제가 현 정부 들어 정치적 이유로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앞으로 전개될 공동화폐 도입 논의에서 우리가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원화의 위상을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러 방안 가운데 이제는 '원화의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을 중장기적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추진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처럼 네 자릿수의 원화 환율체계로는 개도국의 인상을 지워버릴 수 없고 공동화폐 도입논의에서 좋은 위치를 점할 수 없다. 현재 우리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최소한 세 자릿수대 혹은 두 자릿수대의 환율체계는 유지돼야 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