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진로발렌타인스 임직원세미나 겸 단합대회의 밤. 열띤 토론에 이어 여흥시간이 되자 술을 몇잔씩 걸친 임직원들이 갑자기 배꼽을 잡았다. 진한 화장을 하고 옆이 터진 미니스커트를 입은 데이비드 루카스 사장(45)이 깜짝쇼를 벌였던 것. 영국 출신인 루카스 사장은 '영국신사'란 말이 무색할만큼 가끔씩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며 직원들과 스스럼 없이 지낸다. 진로발렌타인스는 1999년 영국의 얼라이드모멕과 한국의 진로가 7대3으로 출자해 만든 합작회사로 그의 친화력이 사내 화합에 큰 몫을 하고 있다. 필립 바우만 회장 말을 빌리자면 얼라이드모멕이 추진한 지금까지의 인수·합병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한다. 진로발렌타인스는 지난해 매출 3천억원을 넘기며 얼라이드도멕이 아시아·태평양시장 전체에서 올린 수익의 3분의 1에 달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 시장점유율은 35% 선으로 경쟁업체와 1위자리를 다투고 있다. 루카스 사장은 "한국경제가 상승 분위기를 탄데다 소비자 니즈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내놓는 전략이 적중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의 경영전략 키워드는 'QUICK'이다. 품질(Quality) 독특함(Unique) 신뢰성(Integrity) 일관성(Consistent) 한국화(Korea)를 집중적으로 추구한다는 의미다. 시장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자는 뜻도 담고 있다. 그는 '세븐 투 일레븐'이란 별명이 붙었다. 아침 7시면 출근해 밤 11시까지 일에 몰두하고 주말에도 회사에서 살다시피한다. 지난 2000년 한국여성과 결혼한 그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나이를 말할때도 "오팔년 개띠"라고 너스레를 떤다. 사원들과 막걸리를 즐겨 마시고 식사때는 소주를 반주로 곁들인다. 2002년 2월부터는 국립국악중·고등학교에 매년 2억원의 장학금을 지원해 주고 있다. 술잔을 돌리고 문상때는 큰절을 하는 등 때로는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적으로 행동하는 그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한국 정서로는 직장의 '위계질서'와 국민들의 '애국심'을 꼽는다. "선배들의 경력과 나이를 존중해주는 피상적인 행동은 이해하겠는데 내면에 흐르는 정서는 도저히 모르겠어요.또 지난 월드컵때는 전쟁 같은 어려움도 겪지 않은 젊은이들이 어떻게 그런 애국심을 보이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3년전 찾아온 낯선 땅에서 경영능력을 인정받고,부인까지 얻으면서 정이 든 한국은 그에게 '기회의 땅'이 됐다. 그러나 "앞으로 위스키 시장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냉정하게 시장을 바라보는 그가 지금까지의 상승세를 어떻게 이어갈지 궁금하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