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위기관리능력 보여 달라..洪準亨 <서울대 공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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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부가 위기를 맞고 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한 형국이다.
반미 촛불시위와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난국은 그럭저럭 넘겼으나,북한 핵문제가 불거져 있다.
방미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백방으로 노력하겠지만,단기간 내에 평화적 외교적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설사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한·미 공조가 올바른 길에 접어든다 해도,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북미관계와 한반도정세의 전개에 어떤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반면 분명한 것은,당분간 미2사단의 현 위치 주둔을 관철시킨다 하더라도 한국의 군사비 부담이 현저히 늘어나 그러잖아도 할 일 많고 쓸 데 많은 정부재정을 크게 압박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념'과 '현실'사이에서 온 나라가 번민과 혼돈의 나날을 보냈으나 마지막에 웃은 쪽은 미국이었다.
나라 안에서도 판도라의 상자로부터 또 다른 종류의 불행들이 쏟아져 나온다.
화물연대의 파업 등 넓은 의미의 노동분규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고,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둘러싼 혼란이 교육현장을 휩싸고 있다.
거듭된 정부의 처방에도 아랑곳없이 부동산가격은 치솟아 서민들을 허탈하게 만들고,경유차 배출가스 허용기준 완화,접대비 손비인정 문제 등을 둘러싼 정부정책의 혼선과 난맥상이 점점 더 악화되는 양상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임기응변과 미봉책에 급급,종합적인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대책이나 금리정책의 경우처럼 정부가 서둘러 강구한 처방들도 대부분 실기하거나 미진한 내용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로 인해 정부의 문제해결능력에 대해 의문부호를 찍는 사람이 하나 둘 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불행들은 실은 노무현정부 출범 당초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역대 정권중 기성정치의 기반이 가장 취약한 상태로 출발하면서도 과거로부터 누적된 최악 최대의 숙제들을 떠맡아야 했던 것이 노무현정부의 태생적 운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정부에 기대를 걸었던 이유는 집권세력들이 정치적으로 참신했고,과거 정권처럼 기득권층에 대한 빚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완전히 딴 판이다.
동북아 경제중심이란 전략슬로건이 무색하리만큼 물류대란이란 말이 나오고 경제와 사회 전반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노무현정부에게 말한다.
'이제 능력을 보여 달라'고.
물론 이 불행과 사회적 고통을 현 정부에만 돌리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니다.
오늘의 불행은 대부분 과거 정권들로부터 전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떠맡게 된 난제들에 대한 구정권의 책임을 들먹이다가 결국 문제의 해결로부터 더 멀어지곤 했던 김대중정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될 일이다.
문제는 노무현정부가 과연 보여줄 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과거 이구동성으로 주문했던 '시스템적 국정운영방식'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노무현정부가 구사할 수 있는 충분한 정책적 레퍼토리를 갖추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지금 그 점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모든 문제를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오래 갈 수 없다.
청와대의 직접 관여는 자칫 분쟁의 당사자들뿐 아니라 잠재적인 분규의 이해관계자들에게까지 잘못된 기대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정부가 초기에 문제를 소홀히 다룬 것이 문제인 경우가 많았지만,'이 정권이야말로 숙원을 풀 최적의 호기'라는 분쟁당사자들 사이에 공유된 기대가 사태 악화에 기여한 측면도 없지 않다.
반면 어제 정부가 화물연대 부산지부의 총파업 결정에 맞서 공권력 투입을 공언한 것을 갖고 '이제 드디어 정부가 능력을 보인다'고 반길 것인지도 의문이다.
노무현정부는 자신이 개입했던 분쟁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각종 모순과 갈등,분쟁들을 그 원인과 성격,귀결,해결의 우선순위에 관해 포괄적이고도 심층적으로 반성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하기 바란다.
그 과정에서 부디 그동안 흘려온 피와 땀을 멈추고,사회적 고통과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을 찾아내기 바란다.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