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불확실성의 공포..박성주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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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park@kgsm.kaist.ac.kr
중국 칭화대(淸華大) 경영대학과 국제 협력 프로그램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베이징을 다녀왔다.
사스에 대한 중국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이었지만 베이징은 흉흉한 루머가 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약속을 중요시 여기는 습관 때문에 다소 무모하다시피 할 여행을 했다.
내심 긴장이 돼 식당에도 가지 않고 일반 택시도 타지 않는 등 조심했다.
사스에도 불구하고 방문해 준 나를 고맙게 생각하였는지 지지부진하던 협력안들도 잘 마무리 됐다.
그런데 사스로 인한 나의 고통은 실은 중국으로부터 돌아온 후에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때마침 있었던 모친의 생신에는 일가 친척들 앞에 마스크를 쓰고 나가야 했고 학교의 교수,직원,학생들과도 직접적인 접촉을 피했다.
2주 동안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일체의 외부 행사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해야 했다.
무엇보다 큰 고통은 혹시 나로 하여금 가족이나 동료,또는 주위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막연한 공포였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 온 사스의 핵심은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이다.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캘리포니아 공대(Caltech)의 볼티모어 총장은 미국에서 일년에 수만 명 혹은 수십만 명이나 되는 교통사고 사망자나 감기 사망자와 비교할 때 사스는 조심해야 할 대상이기는 하지만 너무 공포심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의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초기에는 바이러스의 존재를 몰랐고,아직도 전염경로나 치료 백신에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사람들을 공포에 빠지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스가 심각한 국면을 벗어나고 있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그러나 그 동안의 경과 중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주민이 반대하여 사스 격리 치료 시설 설치를 저지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나 또는 나의 가족에 닥칠지도 모르는 병에 대해 이런 행태가 나타날까?
만약 조기 차단에 실패하고 사스가 창궐하여 나라 전체의 경제와 국민 모두의 건강이 심각한 위험 수위에 오른다면,그 때 우리 동네 아파트 값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무지할 때 사람들은 공포에 빠지거나 용감해 진다.
그러나 공포로는 문제를 풀 수 없으며 때로는 용감해져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