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해 오는 2006년까지 경유 가격을 휘발유값의 75%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정부의 에너지 세제 개혁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화물연대가 경유세 인하를 집단행동 해제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는 택시 버스 등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 및 세수감소를 들어 경유세 인하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민주당이 경유세 인상시한을 1∼2년 늦추기로 의견을 모은 상태인 데다 한나라당도 이에 동조, 정부의 에너지세 개혁은 궤도수정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의 이같은 경유세 인상 유보는 화물 파업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려는 고육책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철도파업에 이어 또다시 사회 특정 계층의 집단이기주의에 밀려 그동안 시행해온 정책을 보류시켰으며 정치논리로 경제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거세다. ◆ 흔들거리는 에너지세제 개혁 =정부는 휘발유 값에 비해 턱없이 쌌던 경유와 액화천연가스(LPG) 가격을 2006년까지 휘발유의 75%와 60% 수준으로 각각 끌어올리기로 하고 매년 7월 단계적으로 세금을 인상하고 있다. 2000년말 개정된 특별소비세법에 따르면 경유는 2006년 7월 이후 ℓ당 4백60원, LPG는 7백4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현재 경유에는 ℓ당 2백34원, LPG엔 2백26원의 세금이 부과되고 있다. 정부는 에너지 세제개편으로 인한 과도한 세금부담을 완화해 주기 위해 인상분의 절반을 경영개선 보조금으로 화물 운송업계 등에 지급해 왔다. 올해 예상 지급액은 4천4백억원이다. 하지만 이같은 에너지세 개혁이 중도에 크게 흔들리게 됐다. 청와대와 민주당, 한나라당이 모두 나서 경유 특소세 인상을 1∼2년 유예하는 방안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 경제 지배하는 정치논리 =민주당 정세균 정책위 의장과 한나라당 이상득 경제특위 위원장은 입을 맞춘듯 "경유세 인상으로 화물운송료 인상분이 상쇄되면 새로운 마찰요인이 될 것"이라며 "세금 인상을 유예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경부의 반대에도 불구, 올해부터 경유세 인상이 유보될 가능성이 커졌다. 청와대는 지난 철도파업때 건교부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철도노조의 손을 들어줬으며 두산중공업 파업때도 노조편을 들었다. 경제논리 대신 정치논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또 한번의 사례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경유세 인상이 유예되면 버스와 LPG를 쓰는 택시, 항공기용 유류를 사용하는 항공업계에도 형평에 맞게 유류세 인상을 늦춰줘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택시와 항공업계도 실력행사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나라빚이 많은 판에 재정수입이 더 줄게 된다. 재정경제부 김낙회 소비세제 과장은 "화물업계에 경유세를 면제해줄 경우 올해 세수가 8천억원 가량 줄어든다"며 "버스와 택시업계까지 세금 면제를 확대하면 세수감소액은 1조7천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 환경문제는 어떻게 =경유세 인상 유보는 참여정부가 국정 모토로 내세우고 있는 환경 보호와도 '코드'가 맞지 않는다.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은 대기오염물질이 많은 경유의 가격을 더욱 높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환경부는 2005년 경유 승용차 국내 시판을 허용해 주는 조건으로 '경유 가격을 휘발유값의 85%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환경부는 재경부와 산업자원부가 이런 조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난 12일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할때 경유 승용차 대기오염 배출 허용기준을 유럽연합(EU) 수준으로 대폭 낮추는 조항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환경부는 또 2006년부터 경유의 황 함유량 기준이 현행 4백30ppm에서 30ppm 이하로 대폭 강화했다. 정유업체들이 탈황장치를 설치하는데 8천억원∼1조5천억원 가량이 소요돼 경유값이 ℓ당 60원∼1백원 가량 오르는 요인이 생긴다. 따라서 경유세 인상이 유예되면 경유승용차 국내 시판 문제는 더욱 꼬이게 될 전망이다.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이 경유승용차 시판 자체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승윤.오상헌 기자 hyunsy@hankyung.com